'2조원' 토종 가상통화 개발하고 자랑 못 하는 현실

지난달 31일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는 국내 가상통화(암호화폐) 역사상 기억에 남을 뜻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국내 기업이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가상통화를 선보이고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 초청된 200여명의 참석자 가운데 180명이 외국인일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였다.

이날 소개된 가상통화는 데일리인텔리전스의 자회사인 더루프가 개발한 아이콘(ICON). 데일리인텔리전스는 데일리금융그룹의 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 개발 핵심 자회사로 2015년 8월 설립됐다. 특히 아이콘은 국내 기업이 개발한 코인 중에서 세계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7일 글로벌 가상통화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오전 9시 현재 아이콘의 총 가치는 16억8300만달러(한화 약 1조8215억원)을 나타내고 있다. 개당 4.41달러(약 4772원)로 3억8000여개가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다. 올 1월 10일 5조1252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4조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전반적인 가상통화 가격이 하락하면서 시가총액도 주춤한 모습이지만 지금도 전 세계 1500여개 가상통화 중 20위에 올라있다. 가상통화를 인정하지 않는 국내 여건상 토종 가상통화의 성적치고는 가히 놀랄만한 일이다. 심지어 금융 당국은 지난해 9월 가상통화 공개(ICO)를 전면 금지해 국내 가상통화 발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아이콘은 전 세계 모든 종류의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다. 금융, 보험, 의료, 학계 등 다양한 영역의 블록체인을 '아이콘 프로젝트'를 통해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더루프가 개발한 '루프체인'을 통해 각 영역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거대한 블록체인(넥서스)를 구성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지난달 31일 개최된 행사의 목적은 아이콘을 알리고 아이콘 메인넷 시현, 아이콘 네트워크, 올해 비즈니스 및 기술 로드맵 등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특히 메인넷을 연다는 것은 해당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공언했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자체 시스템 구축을 끝내고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아이콘은 행사 일주일 전인 지난달 24일 메인넷을 시동했다.

사실상 가상통화나 블록체인에 관심 없던 국민들도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돌연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번 행사를 기대했던 국내 가상통화 투자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아무도 모르는 새 끝나버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상통화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아이콘 역시 국내 ICO가 금지되면서 스위스에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국내 가상통화 거래사이트가 아닌 홍콩 거래사이트인 'OKEX'를 통해 처음 상장돼 거래됐다. 아직까지 국내 거래사이트에는 상장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아이콘의 성공을 목격한 유능한 인재들과 유망 스타트업들이 국내를 떠나 스위스, 독일, 싱가폴, 대만, 인도 등 ICO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외국으로 '디지털 이민'을 떠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예 외국에서 창업한 뒤 ICO를 진행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심각한 인재 유출이며 국가적인 손실이다.

무조건 못하게 막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규제한다고 사라질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많은 기업의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고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