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추진, 속도조절론 '솔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속도를 늦출 전망이다. 올해 16.4% 오른 최저임금의 영향 때문에 영세사업주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신규고용 창출에 먹구름이 끼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접촉하는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속도 조절론'을 시사하면서 올해 중소기업들이 겪었던 '최저임금 쇼크'가 내년부터는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정부에 따르면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19일 열린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서 "2020년 1만원 목표에 대해서 대통령도 상당히 신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6일에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1만원을 두고 "꼭 2020년으로 시기를 못박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같은날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집행상황 등을 감안해 신축적으로 최저임금 관련 제반 사항을 검토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지난 8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올해는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예산이 확정됐기에 일단 연착륙에 힘쓰고, 향후 우리 경제의 감당능력을 봐가며 신축적으로 정책을 조절할 수 있다"며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었다.

잇따르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과제와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었으나 차이는 달성 시기였다. 홍준표, 안철수 후보와 달리 문 대통령은 2020년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맞추기 위해 올해 최저임금이 사상 최대폭인 16.4% 올라가면서 산업현장에서 불만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당장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고용이 위축되고, 영세사업주들은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구직급여, 출산휴가급여 등도 덩달아 올랐다. 최저임금 영향권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르면서 전체적인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속도조절론은 이 같은 중소·영세사업주들의 피해가 당초 예상보다 크다는 판단 아래 나오는 것이다. 내년에도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률을 고수할 경우 고용 위축에 더해 일부 사업자들의 폐업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 최저임금이 12.3% 올랐던 2007년에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최근 "2007년에는 최저임금이 연착륙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며 "그때는 경제성장률이 6~7%로 좋았던 시기지만 올해는 3%로 반토막이 났기 때문에 6개월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는 대신 영세사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상가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현행 9%에서 5%로 낮추고,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율을 점점 낮추고 있다.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업계는 본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를 줄이도록 유통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종합대책이 자리 잡아 영세사업자들의 기초체력이 갖춰질 때까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늦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오른 최저임금은 어쩔 수 없지만, 정부에서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은 포기해야 한다"며 "사업주들이 올해만 어떻게든 버텨내고 내년에 정상적인 인상률로 돌아온다면 영세사업주들의 추가적인 피해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