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뵐 면목 없어"…암호화폐가 막은 귀성길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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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부모님 뵈러 가고 싶었는데…."


서울에 거주하는 3년 차 직장인 최모씨(31)는 이번 설연휴가 달갑지 않다. 지난 1월 초 예금통장에 있던 1000만원으로 암호화폐 중 하나인 '리플'(Ripple)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입은 탓이다. 현재 리플가격은 투자 당시보다 1/4로 폭락한 상태다.

최씨는 "잊으려고 하지만 돈을 날렸다는 사실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돈다"며 "부모님께 드릴 명절선물을 고르는데도 가격표가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부모님께는 (투자 사실을) 말하지 않을 계획인데 아무래도 찜찜할 것 같다"며 "혹시라도 가족 간에 암호화폐 이야기가 나온다면 대화 주제를 재빠르게 돌려야겠다"고 허탈해했다.

암호화폐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2030 세대가 '명절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취업·결혼문제 등 기존 명절기피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다.


직장인 이모씨(30)도 설을 앞두고 가족들 보기에 마음이 편치않긴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큰돈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암호화폐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이씨는 "올해 초 호기심으로 뛰어들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한달 월급이 사라져 있었다"며 "고향에 내려가봤자 '허튼 데 돈 썼다'고 부모님께 꾸중만 들을 것 같아 차라리 혼자 (설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관련 주요 온라인커뮤니티에도 명절을 앞두고 귀성할지 말지 고민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아이디 'feOOO'를 쓰는 한 네티즌은 "(시세가) 엄청 떨어지고 있으니 차비도 아까워 설에 귀성하지도 못하겠다"고 자조했다.

다른 네티즌은 "거하게 돈벌면 조카들 세뱃돈이나 주려고 했는데 (폭락으로) 다 그른 것 같다"며 "원룸에서 혼자 떡국이나 먹어야겠다"고 글을 썼다.

암호화폐 성격을 둘러싼 세대간 '시각차'로 가족 및 집안어른과 말다툼을 벌이기 싫다는 의견도 있었다. 암호화폐가 '투자'인가 '투기'인가란 논쟁이 대표적이다.

지방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대학생 정모씨(27)는 "거품이 꺼진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는데, 부모님은 '또 코인 보고 있냐' '도박 끊으라'고 잔소리를 한다"며 "명절에 집에는 가겠지만 어른들 훈계 때문에 스트레스만 쌓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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