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컬링·男팀추월, 끈끈한 ‘가족주의’ 유대로 ‘금빛’ 기대감 높인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선영이 19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전에서 투구하고 있다. /평창=김창현 기자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아도 어려울 때 더 뭉치는 ‘한국식 가족주의’가 두 개 종목 대표팀 경기에서 독야청청 빛나고 있다. 맏언니(맏형)가 팀의 집중력과 단합을 이끌고, 막내가 온몸으로 희생하는 정으로 뭉친 결속력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컬링 여자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반전으로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세계 1, 2위인 캐나다, 스위스를 연달아 격파하고 5승 1패를 기록한 대표팀은 지금 기세로만 보면 금메달도 손쉽게 딸 것만 같다. 대표팀 구성이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보다 더 끈끈한 단합과 사랑을 보여준 이들은 힘들 때 더 뭉치는 한국식 가족주의의 힘을 과시한다.


대표팀 대부분은 의성 출신으로 학교 선후배 사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의성여중·고에서 컬링을 함께 시작하며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당시 경북 의성여고에 다니던 김은정(28), 김영미(27)는 ‘방과후 학습’으로 컬링을 선택하며 프로의 길을 걸었다.

의성여중에 다니던 김경애(24)는 친언니 김영미가 부탁한 물건을 건네주러 갔다가 얼떨결에 컬링에 합류했다. 김초희(22)는 경기 출신이지만 2015년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언니’들과 친해졌다.

대표팀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회 중 집중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선수촌에서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외부 소식을 접하다 보면 '악성 댓글'에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강팀에 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상대 전력에 움츠러들지 않고 경기 하나, 샷 하나에 집중한다. 김민정 컬링 대표팀 감독은 “우리는 상대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는 정신력 훈련을 해왔다”며 “10년 전부터 그 부분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지난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중국에 패하고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설욕했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중국전 승리 후에도 “똑같았다. 우리가 집중하자는 생각만 했다”고 털어놨다. 또 이구동성으로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 모두 끝나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이승훈(왼쪽), 정재원(가운데), 김민석이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평창=김창현 기자

‘가족 이상의 가족 같은’ 집중력과 단합의 현장은 18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도 목격됐다. 이승훈(30·대한항공), 김민석(19·성남시청), 정재원(17·동북고)이 보여준 ‘형제 브로맨스’는 1인치도 거리를 두지 않는 일심동체의 모습을 빙판 위에서 증명했다.

맏형 이승훈이 있는 힘을 다해 초반 스피드를 낼 때 말없이 동작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의 단합은 강력한 우승후보 네덜란드의 3분40초03보다 0.74초 빠른 3분39초29를 찍는 원동력이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막내 정재원이 힘들어하자, 뒤에 있던 김민석이 엉덩이를 밀어주는 등 완벽한 팀워크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을 앞두고 페이스가 일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1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12월 캘거리에서 열린 3차 대회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4차 대회에서는 7위로 부진했다.

올림픽 무대에선 다른 경기와 달리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올림픽 무대에서 예선 1위로 통과하면서 브로맨스의 힘은 더 강해졌고, 자신감도 늘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18일 5승 무패의 스웨덴을 무너뜨리며 예선 1위에 올랐고,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대표팀은 같은 날 ‘강적’ 네덜란드를 넘어 예선 1위를 기록했다.

남은 경기에서 집중력과 단합, 사랑이라는 3각 무기로 승부할 한국 대표팀의 선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20일 미국, 21일 러시아·덴마크와 남은 예선 일정을 치른다. 남자 팀추월 대표팀은 21일 준결승(오후 8시 20분)에 이어 결승(오후 10시 10분)까지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