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상압박에 "兆 단위 손실 막아달라"..강관업계의 비명

'매출 손실 최소 1조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무부의 철강 수입 규제 권고안 중 최악의 수를 택하게 되면 국내 강관업계가 입을 피해 규모다. 미국 강관 특수가 한창인 상황에서 한국의 무역 충격이 극대화된 것이 이번 미국 철강 수입 규제의 핵심이다.


업계에선 정부가 나서 트럼프가 '차악'의 수를 두도록 유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악' 선택 시 피해규모 최소 1兆=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 3개 권고안 중 두 번째 안인 '한국을 비롯한 12개국에 최소 53% 관세 부과'를 선택할 경우 세아제강 (220,500원 ▲2,000 +0.92%)과 휴스틸 (4,465원 ▼5 -0.11%), 넥스틸 등 주요 강관 3사가 입을 매출 손실은 약 1조450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세아제강은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2조2899억원 가운데 약 20%인 4580억원이 증발할 수 있다. 전체 매출에서 대미 수출 비중이 52% 수준인 휴스틸은 3590억원의 매출이 사라진다. 미국 수출 비중이 3사 중 가장 높은 80%로 알려진 넥스틸은 약 228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A철강사 관계자는 "3사 모두 미국 강관 수출을 통한 매출 전체가 날아갈 수 있는셈"이라고 말했다.


53% 관세 부과로 미국 강관 수출길이 아예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권고안이 특정 12개 국가만을 겨눠 여기서 제외된 캐나다와 일본, 독일 등 경쟁 국가 대비 수출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한 데다 3사 모두 이미 고강도 반덤핑 관세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넥스틸 유정용 강관에 46.37% 반덤핑 관세 부과 예비판정을 내렸다. 휴스틸과 세아제강엔 19.68%, 6.66%씩 부과됐다. 이 예비 판정이 확정되고 트럼프가 53% 관세 부과안을 택하면 넥스틸과 휴스틸, 세아제강의 합산 관세율은 각기 99.37%, 72.68%, 59.66%가 된다.

B철강사 관계자는 "일단 관세율이 60%에 육박하게 되면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며 "여기서 합산 관세율이 99.37%냐 59.66%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3사 예상 손실 약 1조원도 최소한의 규모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3사를 포함한 약 100여개 국내 강관업체들은 지난해 미국에 모두 1조8500억원 가량의 유정용 강관과 송유관 등을 수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의 강관 '정밀타격', '차악' 유도해야=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른 철강 수입 안보 영향 조사 착수와 상무부의 이번 권고안 자체가 한국 강관업계를 정밀 타격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철강업계의 미국 전체 수출물량 355만톤 가운데 56%인 199만톤이 강관이었다. 열연과 냉연강판은 각각 27만톤, 4만톤에 불과했다. 이미 2016년 하반기 미국이 포스코 (394,500원 ▼1,500 -0.38%)와 현대제철 (31,500원 ▼100 -0.32%)에 각각 60%대, 13~38%대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해 열연, 냉연강판 수출을 틀어막아서다.

이 때문에 포스코의 2016년 전체 생산물량 중 4.6% 수준이던 미국 수출은 지난해 0.3%로 떨어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은 수입 제한 카드가 강관 제품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강관 수출은 셰일가스 붐과 유가 상승에 따른 미국 채굴 확대를 타고 증가세였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2015년 110만톤 수준이었던 미국 강관 수출은 지난해 199만톤으로 80.9% 뛰었다. 강관을 제외한 철강 제품 수출이 같은 기간 50.8%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C철강사 관계자는 "이번 권고안이 중국을 겨냥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 두 번째 안엔 미국의 동맹국 중 한국만 포함됐다"며 "결국 수출이 늘어나는 한국 강관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권고안 최종 선택 기한인 오는 4월 11일까지 정부가 중재에 나서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세아제강의 경우 미국 현지 공장이 있지만 생산능력이 전체 현지 판매량의 2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수출물량을 흡수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른 업체들이 미국에 생산 시설을 마련하는 데에는 막대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결국 국가 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통상압박을 외교적 방법으로 푸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해 대미 수출 63% 수준의 쿼터를 설정하는 안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3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하되 관세율 등에 수정을 할 수도 있어 협상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