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내는 블록체인 기부…횡령도 유용도, 새는 것도 없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미국 적십자는 5억달러(5400억원)의 성금을 모았다. 적십자는 기부금의 91%가 구호에 사용된다고 공언해왔지만 2016년 기부금 사용처를 추적한 결과 40%가 내부적으로 쓰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런 불투명한 운영뿐 아니라 자선단체의 문제는 또 있다. 수혜자 입장에서는 기부금 전달과정에서 중개자들이 많아 도달하는 금액이 줄어든다. 자선단체 역시 기부금을 송금하는데 드는 수수료가 늘 골칫거리다. 물품이라는 도난과 분실의 위험도 있다.

그래서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선단체가 늘고 있다. 자선단체가 모금 사유, 필요 금액, 사용 계획 등을 블록으로 등록하는 것이다. 기부금이 들어오면 이 역시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다시 여기에 수혜자 계좌로 이체되고 인출된 기록이 더해진다. 이 과정을 기부자 등 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가 감시할 수 있다.

/사진=비트기브

2013년부터 비트코인으로만 기부를 받는 비영리재단 '비트기브'(Bitgive). 이 단체는 케냐의 학교에 화장실 지어주기, 네팔에 의료봉사를 위한 모바일기기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를 위해 블록체인 기반의 '기브 트랙'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단체가 마을을 지정하면 기부자들은 이 단체의 가상계좌로 비트코인을 입금하게 되고 이후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체가 공구를 사려고 비트코인을 현지화폐로 바꾸면 이 정보도 블록체인에 등록된다.

이 단체는 비트코인을 기부에 활용하면서 송금 수수료도 크게 줄였다. 달러를 송금하면 해외송금 수수료가 평균 3%이고 현지화폐로 바꿀 때 환전수수료도 내야 한다. 비트기브 창업자 코니 갈리피는 "당신이 세계 어디에 있든지 오지의 빈민에게 1대 1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부패한 정부도, 은행도 없다"고 역설했다.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 파이낸셜도 '앤트러브'(Ant Love)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기부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알리페이 앱에서 지원이 필요한 곳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알리페이로 기부한다. 기부금 집행 과정도 물론 확인된다.

유니세프는 지난해 8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스마트계약 기술을 기부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조건을 설정하면 계약이 자동으로 이행되는 기술이다. 만약 기부자가 '100만원이 모이면 ○○단체에 기부를 하겠다'고 블록체인에 등록하면 실제 100만원이 모였을 때 그 금액만큼 자동으로 기부가 이뤄지는 것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 더 정교한 기부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우선 수혜자를 특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청소년 생리대 지원을 위해 그 가정에 돈을 보냈을 때 수혜자를 딸로 지정하는 스마트계약을 걸어두는 것이다. 생리대를 사려고 했을 때만 돈이 인출되는 것이다. 목적도 특정할 수 있다. 만일 기부금을 자녀 학자금 지원용으로 특정하면 수혜자가 이 목적이 아니면 자동으로 인출을 막는 것이다. 조건을 지정할 수도 있다. 수혜자의 자활을 지원하는 대신 근로활동을 조건으로 한다면 이를 어긴 정보가 등록됐을 때 기부금은 자동으로 회수된다.

블록체인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신뢰를 지키는 데 드는 비용(cost of trust)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블록체인은 신뢰가 생명인 자선사업에 유효할 수 있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