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숙려제' 제자리걸음…'2021수능·초등영어' 논란 가열

교육부 국민소통 플랫폼 '온교육'(사진=온교육 화면 캡쳐)

교육부가 국민과의 소통·협력을 강조하며 '국민참여정책숙려제(정책숙려제)'를 도입키로 했지만 한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책별 국민소통 계획 수립은커녕 구체적인 운영 매뉴얼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범위와 '초등 3~6학년 영어교육 내실화' 추진을 놓고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어 교육부가 여전히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정책숙려제, 한 달째 매뉴얼 작업만=25일 교육계에 따르면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2018년 정부업무보고에서 "교육현안을 국민 눈높이와 함께하기 위해 정책숙려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수능 절대평가와 어린이집·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 등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자 정책 입안 단계부터 국민 의견을 귀담아 듣겠다며 꺼내든 카드다. 박춘란 차관도 "이제부터는 정책마다 국민 소통 계획을 함께 수립해 30일에서 6개월까지 숙려 기간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그러나 정책숙려제 도입을 발표한지 한 달이 되도록 운영 매뉴얼 작업에만 매달리고 있다. 최성부 교육부 혁신행정과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늦어도 다음 달까지는 운영 매뉴얼을 확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정책숙려제를 일단 시행한 뒤 드러나는 문제점은 수정·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운영 매뉴얼 작업 과정에서조차 외부인사로 구성된 공식자문단을 제대로 꾸리지 못해 국민 참여 활성화라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자문단 구성을 통한 공식회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 과장은 "갈등·교육 전문가와 학부모 등 1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회의를 한 번 열었다"며 "운영 매뉴얼이 확정된 뒤 필요하다면 자문단 등도 공식 위촉할 것"이라고 했다.

정책숙려제는 지난해 10월 예산을 들여 만든 교육부 온라인사이트인 '온교육(moe.go.kr/onedu.do)'을 통해 국민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하지만 온교육이 교육부 홈페이지 하위메뉴에 위치해 있는 등 일반인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유아교육부터 평생교육까지 5개 분야에 걸쳐 의견을 받는 토론광장, 여론수렴 게시판은 현재 유야무야한 상황이다. 교육계 한 전문가는 "만들어 놓을 테니 찾아오라는 방식은 전형적인 공급자 마인드"라며 "국민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국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도 같이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수능·초등영어' 또 갈등 조짐=정책숙려제 도입이 헛바퀴만 돌고 있는 가운데 수능과 방과후 영어교육 등 각종 교육현안을 놓고 탁상행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교육부가 올해 고1 대상인 2021학년도 수능에서 이과 학생이 치를 수학 가형의 출제범위 가운데 '기하'를 빼기로 한 것에 대해 수학계와 과학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언론인터뷰에서 "모든 연구에서 활용되는 뭉쳐진 개념의 일부인 기하와 벡터를 분리해 수능 과목에 포함할지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내 기초 과학계 대표 학회 10여곳이 모인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는 교육부에 기하를 수능 출제범위에 포함토록 촉구했다.


초등 3~6학년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도 교육부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일관성 없는 영어교육 정책에 대한 우려 해소가 먼저라며 문제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고 처방도 한참 빗나갔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방침을 뒤집는 원어민 교사 확충이나 정치적 성향이 짙은 인사들의 영어교육 자문단 포함 등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이해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이해·설득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일방통행식이나 오락가락 행정으로는 정부가 갈등만 부추길 뿐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