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 뭐기에…"매년 최소 2000억" 중복비용 우려

보험 가입자의 손해사정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보험사가 이를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보험업계에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연간 최소 2000억원에 달하는 중복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보험사의 과도한 비용증가는 결국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손보업계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공동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박 의원은 개정안은 고객이 보험사의 손해사정 결과에 이의가 있어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해 고객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보험사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현재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보험에 가입한 고객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보험금을 지급 받으려면 해당 질병, 사고의 수준과 계약자의 책임 비중 등을 따져 보험금을 결정하는 과정인 손해사정을 거쳐야 한다. 보험사는 손해사정이 끝나야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국내에서는 통상 이 작업을 보험사의 자회사인 손해사정사가 맡는 경우가 많아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험사의 자회사에 손해사정을 맡기는 것을 원치 않으면 가입자가 직접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비용 부담도 있어 일반화되지 않았다.

보험업계는 고객이 별도로 손해사정사를 선임한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토록 할 경우 중복조사가 남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체 손해보험사의 손해사정 조사비용은 2015년 1조8706억원, 2016년 1조9703억원, 지난해 10월 기준 1조7054억원으로 연간 2조원에 육박한다. 정액형 상품이 많은 생명보험사는 손해사정 비용이 손보사의 10분의 1 미만이라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손해사정 10건 중 1건만 중복조사를 하더라도 비용은 지난해 기준 약 2000억원이 발생한다. 중복조사를 하고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손해사정사를 선임해 조사하겠다고 하면 비용은 이중 삼중으로 더 불어나게 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보험금을 받기 위해 중복조사를 택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독립손해사정사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무리한 영업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면 보험료 상승의 원인이 돼 선량한 가입자들이 손해를 입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손해사정 업무의 공정성 제고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손해사정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지 않고 보험사 내부에서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해사정 업무가 보험업의 주요 업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비용절감 등의 차원에서 손해사정을 외부에 위탁하기 시작하면서 보험업법상 주요 업무에서 예외로 둔 상태다. 주요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자회사 등 외부 위탁도 가능하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손해사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객의 알권리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일감 몰아주기 등의 논란을 없애려면 아예 해외처럼 주요업무로 다시 규정해 보험사가 직접 손해사정을 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