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GM에 차등감자 요구하기로…최소 20대 1 감자해야

KDB산업은행(산은)이 미국 GM 본사에 출자전환과 함께 차등감자를 요구할 계획이다. 한국GM의 그간 부실경영을 대주주가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GM이 한국GM에 빌려준 돈을 출자전환하되 감자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GM의 출자전환에 따라 2대 주주인 산은의 지분율이 희석돼 '주주총회 특별결의 거부권'이 상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차등감자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2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에 대한 실사가 빠르면 이번주 개시될 예정인 가운데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다시 방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산은은 진행 중인 GM과의 실사 실무협의 결과를 확정한 뒤 곧바로 실사기관인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한국GM의 경영상태 진단에 착수할 방침이다.

GM 지원을 위한 실사 절차가 빨라지면서 실사 이후 GM과의 협상에 대한 산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GM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GM의 경영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현재 산은이 갖고 있는 주총 특별결의 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엥글 사장은 지난주 정부와 산은 등을 만나 GM 본사 차입금의 출자전환을 제안하면서 산은의 지분 비율에 따른 유상증자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GM의 출자전환은 환영하지만 산은의 증자는 어렵다는 입장을 정했다. 한국GM의 경영부실은 대주주인 GM 책임이라는 것이다.

GM이 한국GM에 빌려준 돈 가운데 1조7100억원이 오는 4월초 만기 도래하는 만큼 시간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GM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 산은의 지분율이 떨어져 '거부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GM 정관에 주총 특별결의 사항은 보통주 85% 이상 찬성으로 가결된다. 현재 산은의 한국GM 지분율은 17.02%로 가까스로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실사 후 지원 방안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산은은 GM에 출자전환과 함께 일정 수준의 감자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GM 부실에 대한 GM 본사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자를 요구할 명분은 충분하다"며 "감자가 없으면 산은은 지분율 유지를 위해 GM 요구대로 지분율에 비례해 증자에 참여하는 것 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장부상 한국GM의 현재 자본금은 1660억원이며 지분율을 고려하면 산은의 출자분은 282억원 가량이다. GM이 차입금 3조원 가량을 일괄 출자전환하면 전체 자본금은 3조1660억원이 되며 산은이 추가 출자하지 않을 경우 지분율은 1% 미만으로 떨어진다. 산은이 주총 특별결의 사항을 반대할 수 있는 최소 지분율 15%를 유지하려면 대략 '20대 1' 수준의 대주주 차등감자가 필요하다.

산은은 과거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책임을 묻는 의미에서 대주주의 감자를 요구한 사례가 있다. 산은은 STX조선해양과 금호산업, 동부제철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주주 지분은 100대 1, 소수주주 지분은 4대 1로 차등감자한 바 있다.

문제는 GM이 이같은 차등감자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2002년 옛 대우차 인수 이후 일방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거나 비공식적으로 산은 지분 매입을 제안하는 등 산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줄곧 노력해 왔던 만큼 출자전환만 고집한 채 감자 요구는 거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GM이 차입금 회수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이달 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7200억원은 일단 회수를 보류했지만 만기 연장을 못박지는 않아 언제 회수를 결정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소집은 언제든 가능하다"며 "조기 실사로 인해 한국GM 사태가 다소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실사 이후 다시 갈등이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