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폭로' 김수희 "'미투', 더 나은 사회로의 움직임"

김수희 연출가가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극단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김수희 연출가가 "(지금 상황은) 만연한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에 취약했던 예술계가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극단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제작발표회에 모습을 드러낸 김 연출은 "연극을 처음 시작한 20대 때에는 '내가 잘못했고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갈등이 많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20년 가까이 연극을 해 온 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배우, 스텝, 관계자분들과 같이 풀어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김 연출은 이날 발표회에서 '연출 예정 작품 외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전제하면서도 연출작품에 대한 설명을 빗대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에둘러 표현했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은 "매일 매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연극을 하는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연극이 회생하고 있다. 연극의 민낯이 까발려졌다는 견해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연출은 서울시극단에서 진행하는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에 선정된 창작 희곡 '너와 피아노'(김경민 작, 2015)의 연출을 맡았다.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은 지난 2015년부터 매 해 두 명의 신진 극작가를 선발해 서울시극단 무대 상연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선발된 작가들은 작품 집필을 위한 창작 제작비와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


김 연출이 멘토로 나서 작업하는 김경민 작가의 '너와 피아노'는 피아노 교습소를 배경으로, 억압된 세상에 갇힌 소녀들의 욕망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특정 제자만을 혹독하게 지도하며 다른 제자들에게는 폭언과 학대를 일삼는 선생, 비범한 재능으로 모두의 기대와 관심을 받았으나 배관공의 아이를 임신하며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제자의 모습이 담겼다.

김 연출은 작품에 대해 "구조 속의 여자들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3년 전에 쓰인 이야기가 지금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조가 문제인 것인지 구조 속 개인의 선택이 문제인 것인지는 저도 지금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쓴 김경민 작가는 "15년도에 작품을 썼을 때는 여자들의 욕망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는데, 이번에 연출님과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드러내게 됐다"며 "'여자들의 이야기로 불리는 게 뭐가 나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너와 피아노'는 다음달 15일부터 18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