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보복 도미노…1930년대 대공황이 이렇게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1920~30년대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트위터에 "무역에서 사실상 모든 나라에 수십억 달러를 잃는다면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같은 날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의 '파워런치' 프로그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서 첫 발을 쏜 것과 같다"며 "그가 다른 관세도 올릴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공황 때도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상호호혜세'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호호혜세는 다른 나라가 자국산 제품에 물리는 세금과 같은 수준의 수입세를 물리는 일종의 보복관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수에 따른 보복 악순환이 대공황 때처럼 세계 경제를 초토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20년대는 미국 경제에 초고속 성장기였다.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렸을 정도다. 1920~29년 미국의 부는 2배 넘게 불어났고 투기 바람 속에 주식시장도 호황을 누렸다. 1929년 여름 들어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하더니 같은 해 10월 뉴욕증시가 폭락한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이 대공황의 서막을 알렸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실업자들/사진=위키피디아, 미국 국가기록원(NARA)

대공황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 분분하지만 미국의 허버트 후버 행정부가 불황 타개를 위해 1930년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이 공황을 심화하고 장기화하며 전 세계로 공황을 전염시켰다는데 이견이 별로 없다. 1995년 미국 경제사학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스무트-홀리법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응답했다.

스무트-홀리법은 당초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지역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의원들의 요구로 관세품목이 2만여개로 늘었고 1921~25년 평균 25.9%였던 관세율이 1932년 59.1%까지 치솟았다. 1830년 61.7%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대공황에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은 각국의 보복 조치를 촉발했다. 관세, 수입제한, 환율 통제 등의 조치가 총동원됐다.

이 결과 국제무역이 위축되면서 세계 경제가 무너져 내렸다. 1929년부터 경기가 바닥을 친 1933년까지 미국의 수입과 수출은 각각 66%, 61% 줄었고 1930년 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1932~33년 25%까지 치솟았다. 세계 무역 규모는 1929~34년 66% 쪼그라들었고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는 1929년부터 1932년까지 15%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2008~2009년 경기침체기엔 세계 GDP 감소폭이 1%도 안 됐다. 대공황에 따른 경제난 속에 나치를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이 급부상했고 이는 결국 2차 대전의 불씨가 됐다.

보호무역을 일삼던 세계는 대공황의 쓰라린 경험에서 얻은 교훈 아래 전후 자유무역질서를 마련했다.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이어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무역 제재가 전후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자유무역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의 철강·알루미늄 무역 제재 조치에 이미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이 반발하며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3일 뉴욕타임스(NYT)에 쓴 칼럼에서 "무역전쟁은 좋을 게 결코 없다"며 "보복의 악순환이 세계 무역을 위축시켜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보복의 악순환이) 매우 파괴적이라는 게 단기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끊기면 미국에서 당장 뭐라도 생산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