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대비나선 중국…외교라인 격 높이고, 농산물 보복카드 만지작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김신회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강행하는 등 무역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중국도 이에 대한 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교 예산을 대폭 늘리고 당 영향력을 강화해 외교 역량을 제고하는 한편, 미국의 강경 조치가 계속될 경우 상응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중미는 경쟁할 수 있지만 경쟁자가 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파트너가 돼야 한다"면서 "무역전쟁은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필요한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들을 해나가고 있다. 먼저 외교 강화다.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에 상응하는 글로벌 외교를 펼쳐나가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당면 과제인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 대비하는 측면도 크다. 이번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확정될 인사에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부총리로, 왕이 외교부장은 국무위원으로 각각 승진시켜 외교라인의 격을 높인다. 시진핑 1기 정부에서 사실상의 '2인자' 역할을 했던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도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하며 시 주석의 대외 업무를 보조해 외교업무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무원이 관장해온 외교 총괄 권한을 당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제관계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중국 공산당 내에 신설해 통상, 대만·홍콩 업무와 연계하면서 각종 대외 업무를 통일적으로 지휘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정치 시스템에서 정부보다 위에 있는 당이 외교를 직접 챙기게 되면 외교 역량도 그만큼 강화될 수 있다. 올해 외교 예산도 전년 대비 15.5% 늘어난 600억 위안(약 10조100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차이나머니'를 실탄으로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더 내겠다는 의미다.

외교전에 대비한 외교 부문 강화와 함께 중국이 구체적인 대응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점차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고 중국도 당할수만은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태양열 패널과 세탁기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데 서명했다. 부과 대상국에 중국은 모두 포함돼 있다.

중국의 미국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고 강도 높은 조치들이 취해질 경우에는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주 미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경제 책사' 류허 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에게 대미 무역 흑자를 약 1000억 달러(약 107조 원) 줄일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무역 흑자액은 3750억달러로, 거의 4분의 1을 감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국의 보복 조치 카드로는 농업 분야가 주로 꼽힌다. 중국은 대두(콩)와 옥수수 등 미국산 농산물 세계 2위 수입국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의 3분의 1을 수입한다. 미국 주요 콩 산지가 몰려 있는 중서부지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다. 미국 농가의 피해가 커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가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국의 무역 보복 표적이 될 수 있는 게 미국산 농산물뿐인 건 아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면 아이폰 매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더욱이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는 식으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최근 고공행진 중인 미국 국채 금리의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는 것으로 채권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미국의 철강 무역제재에 중국이 5가지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무역 보복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위안화 평가절하 △국채 등 미국 자산 매각 △북한 등 지정학 문제에 대한 입장 전환 등이다. 골드만삭스는 이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무역 보복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