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이 질병?…진단 기준·파급력 검토 필요"

WHO(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 질병 코드 제정에 나선 가운데 학계와 관련업계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고 파급력에 대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9일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 기조 발제로 나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도 여전히 인터넷 게임은 정식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내성과 금단증상 등이 수반돼야 중독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 게임중독은 이 부분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DSM-5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 장애 진단 분류체계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편람으로 꼽힌다.


WHO는 오는 5월 열리는 국제질병분류기호 개정(ICD-11)에서 '게임장애'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ICD-11 초안은 게임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순위에 둬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행위의 패턴'으로 정의했다. 한마디로 게임중독을 말한다.

한 교수는 "WHO가 제시한 게임 중독의 진단 기준에도 내성과 금단증상이 빠져 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혼돈에 빠져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옥스포드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스톡홀름대학교, 시드니대학교 등 유명 대학의 정신 건강 전문가와 사회 과학자 36명은 WHO의 행보에 반대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논문에는 연구진 간에도 게임 장애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명확한 과학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질병 분류 시스템 상 새로운 질환을 공식화하기 이전에 중독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돼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플레이가 노인들의 능력을 향상 시키고 뇌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 등을 예로 들었다.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면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게임포비아'에서 비롯됐다"며 "사회문제의 원인을 쉽게 찾고 싶어하는 정치인이나 교육과 건강의 분명한 적의 존재가 필요한 교사나 학부모, 지속적인 환자가 필요한 의사들이 게임포비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 중독자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 수가 최근 10년 동안 증가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지금은 아이들이 게임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하니 조만간 게임이 아니라 유튜브를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토론회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도 "게임 중독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질병으로 제정될 경우 부정적 이미지가 커져 노시보 효과가 일어나고 병적 이득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며 "게임 과몰입은 보통 30대 이전에 사라지게 되는 데 정신장애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 청소년기의 일시적 과몰입이 평생의 낙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