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컬링대회,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로봇이 왜 졌냐면"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AI 컬링로봇 '컬리'/사진=과기정통부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로봇보다 뛰어난 거죠.”

지난 8일 경기도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동에서 열렸던 세계 첫 ‘인간대 로봇 컬링대결’.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학회장)는 당시 인공지능(AI) 컬링로봇 ‘컬리(Curly)’가 3대 0으로 인간팀에게 패한 이유를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고려대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사진=류준영 기자

이 교수는 인공지능(AI) 컬링로봇 ‘컬리’(Curly)의 아버지다. 같은 대학 설상훈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엔티(NT)로봇 등 8개 기관 연구자 60여 명과 함께 고려대 컨소시엄을 구성, 컬리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최적의 투구 전략을 만드는 AI 컬링 소프트웨어(SW)인 ‘컬브레인’, 빙판 경기장 위에서 자동차 ABS(미끄럼방지제동장치)보다 더 정교하게 미끄럼을 잡아주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초당 0.01m 속도 제어 기술 등으로 중무장한 컬리는 상대팀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아웃’ 성공률이 80%에 달한다. 그런데 왜 졌을까.

◇“빙질 모델링 완벽치 않았다”=당연히 로봇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던 관중들은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자 의아해 했다. 오전에 치른 시범경기는 1대 0으로 로봇팀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정오 이후 투구로봇의 정확도는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다. 컬 브레인이 A지점으로 스톤을 보내라고 지시해도 그 지점에 닿지 않는 치명적인 공격 범실이 속출했다. 이 교수는 이날 경기장 안팎에서 빙질에 영향을 미친 기온 변수를 결정적 패인으로 꼽았다.

“미끄럼 정도를 예측해 스톤을 길게 밀지 짧게 밀지를 결정하게 되는 데 그날따라 예측이 계속 빗나갔어요. 아침 최저기온, 낮 최고기온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졌고, 오전에 비까지 와서 습한 데다 경기장 안에 60명에 가까운 대회 관계자, 언론사 카메라·취재기자들이 한번에 몰리면서 얼음이 굉장히 빨리 녹았어요. 패인의 원인은 빙질에 대한 모델링이 완벽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실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빙질의 상태를 모두 모델링한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죠.”

◇로봇 오류?…“후공 잡기 위한 전략이죠”=평창동계올림픽 종목은 알파인스키, 봅슬레이, 피겨 스케이팅 등 총 15개다. 이중 AI SW를 적용할 종목으로 컬링을 주목한 이유는 뭘까.

“이를테면 스톤 앞에 가드를 세울 것인가. 어떤 스톤을 어떻게 맞춰 테이크아웃 시킬 것인가 등 인공지능이 전략을 세우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 종목이 유일하게 컬링 밖에 없었어요.”

실제로 이번 대회에선 컬리가 다음 경기에서 후공을 잡기 위해 일부러 스톤을 엉뚱한 곳으로 보내는 ‘버리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본 어떤 분이 제게 로봇이 오류를 일으킨 것 같다고 했는데 실수가 절대 아닙니다.”

로봇 디자인은 총 3번 바꼈다. 컬리는 처음에 제자리에 선 채로 스톤을 잡아당겼다 쏘는 고정형으로 설계됐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스톤의 속도였어요. 초당 3m로 밀 수 있어야 하는 데 이 속도가 도저히 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로봇이 직접 달려 가속도를 붙이는 형태로 최종 디자인됐죠.”

◇AI와 로봇 결합에 韓 추월 전략 있다=2016년 3월 9일, 세계 최정상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AI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대결’이 있은 뒤 2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의 AI 기술력은 어디까지 왔는지 관심이 쏠린다.

“아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3곳의 AI R&D(연구·개발) 투자금과 우리나라 정부, 민간 전체 AI R&D 예산이 비슷할 겁니다. 비교가 안 되는 거죠. AI 국제학회엔 이미 중국 교수들이 주류로 올라섰어요. 컬리를 만들기 위해 해외 논문을 찾아봤는데 AI와 로봇을 결합시키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죠. 이거다. 무릎을 탁 쳤어요. 여전히 딥마인드는 AI만, 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보스톤 다이나믹스는 로봇만 하고 있어요. AI와 로봇을 결합시키는 틈새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한다면 시장 추월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