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생 최민지vs이동우… 동갑 男女기자, 미투 배틀

/그래픽=이지혜 기자

'미투'(Me too) 운동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 2달. 유력 차기 대권 주자를 향한 폭로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고백이 이어졌다. 전방위적으로 퍼졌고 시민들도 귀를 기울였다.

반작용도 뒤따랐다. 많은 남성은 미투의 화살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빠졌다. '펜스룰'을 꺼내 들어 여성과 거리를 유지했고, 급기야는 남성 역차별을 지적하는 '유투'(You too) 운동마저 나왔다.


남녀 성 대결 양상으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본질이 흐려진다는 우려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 남녀 간 공감대는 필수다. 어디서 엇나갔는지 접점을 어떻게 찾을지 86년생 동갑내기 30대 남녀 기자가 맞붙었다. 이들의 대화를 전문가들의 진단과 함께 지면에 실었다.

▶이동우 기자(이하 이) 최근 남성 일생을 관통한 역차별을 다룬 크라우드펀딩 소설 프로젝트 '90년생 김지훈'이 화제다. 대표적 여성주의 소설로 꼽히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해 나왔다.

▶최민지 기자(이하 최) 듣기만 했다. 왜 미투 운동에서 유투 운동이나 90년생 김지훈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 최근 성폭력 고발 내용은 권력의 상하구조가 핵심이다. 성폭력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수많은 갑질 중 하나일 뿐이다. 이걸 알리는 게 왜 남성 혐오인가.


▶(이) '남성 자체가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 미투 운동에 박탈감을 느끼는 2030세대 남성은 가부장적 문화 아래서 자랐지만 막상 남자라서 누린 것은 없는 세대다. 크면서는 '남자가 울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고 학교, 군대에서 체벌 등 온갖 불합리한 일을 경험했다. 군대 다녀온 사이 취업한 여자 대학 동기들을 보며 박탈감도 느꼈다. 연애할 땐 대부분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고 어마어마한 집값 때문에 결혼도 힘들다.

▶(최) 이때까지 남성이 사회적 권력을 쥐어온 건 맞지 않나. 여성은 취업할 때 차별받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된다. 워킹맘으로 살기 위해선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2등 시민'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명절마다 뒷짐 지는 남편 앞에서 전 굽는 건 일상이다.

▶(이) 사소한 역차별도 꽤 있었다. 학창시절, 사회생활하면서 조금만 어렵고 힘든 일은 남자에게 돌아온다. 체벌 문화를 예로 들면 남자들은 대걸레 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맞아도 여자들은 손바닥만 맞고 끝나더라.

▶(최) 여성도 '예쁨'을 강요받으면서 자랐다. 거기다 성폭력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이다. 친구들과 얘기하면 성추행 경험이 기본적으로 몇 개씩 나온다. 데이트 비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막상 소개팅 자리에서 돈을 내려 하면 '나 다음에 안 볼 거냐'며 싫어하는 남자들도 있다.

▶(이) 잘 몰랐던 부분이다. 여자들이 과도하게 남성을 의식한다는 생각만 했지 공포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미투가 남성 혐오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최) 남성이 만들어 놓은 담론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성들이 세상을 흔드니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아닐까.

▶(이) 그러기에는 지금 2030세대 남성이 가진 것이 너무 없다.

▶(최) 남자들도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성을 배제하자는 게 미투 운동의 본질은 아니다.

▶(이) 그럼 어떻게 해야 미투 운동이 남녀 성 대결로 흐르지 않을 수 있을까.

▶(최) 공감이 답이다. 그러려면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하는 것 같다. 다만, 이때 '남자니까…' '여자니까…' 등 특정 성이 무조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은 금물이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나타나고 있는 성 대결 양상은 싫든좋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남성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오해받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일부에만 해당하는 극단적인 현상이 아니다"며 "이들의 분노가 함축하는 걸 읽어내야 미투 운동이 연착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첨예한 성 대결의 배경에는 취업난 등 각종 사회 현상이 연관돼있다는 지적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다"며 "2000년대 들어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고용과 복지에 대한 편향적 시선이 드러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 시험 등 각종 선발고사에서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양성 평등화 과정에서 남성이 희생양이 됐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갈등이 혐오 일변도로 번지지 않으려면 결국 대화와 공감, 교육이 해결책이라는 진단이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펜스룰 등 조직 내에서 소통이 차단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와 반대로 남녀 간 소통창구가 많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운택 교수는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며 "양성평등 교육이 의무교육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