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학부모=떼쓰는 사람? 정당한 권리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치안센터 앞 인도에서 전국 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사진=뉴스1

"왜 우리 학교에 왔어요? 옆 학교에 장애학생 많아서 외롭지 않을 건데."


아들 입학 상담을 하러 온 엄마에게 교장이 물었다. 엄마에겐 익숙한 질문이었다. 자폐아 아들을 환영하는 일반 학교는 어디에도 없다. 어딜 가나 '특수학교 가보세요', '옆 학교가 나을 거예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경증 자폐아인 김도영군(14)의 어머니 오수미씨(49)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들은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다. 오씨는 "어느 학교나 장애학생이 지내기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며 "다 똑같으니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서 변화시키는 게 부모들 몫"이라고 말했다.

그 몫을 해내기 위해 오씨는 무릎을 꿇고 삭발했다. 이달 3일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209명의 부모 모두 한마음이었다. 특별한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장애인들이 국민의 기본의무인 '교육'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국가도 의무를 다하라는 요구다.

◇"아들의 12년은 지옥이었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 전성우씨(25)는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일반 학교에 다녔다. 전씨의 어머니 김종옥씨(56)는 아들의 12년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전씨는 학창시절 내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이름 대신 '애자'(장애인 비하표현)라고 불렸고 이유 없는 욕설과 폭력에 시달렸다. 1년에 몇 번씩 학교 사물함에 있는 모든 물건을 가방에 짊어지고 왔다. 다신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교사는 아이들을 방치했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학교 수업에 지장이 많다. 어머니가 잘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를 받아준 학교에 감사한 마음에 한동안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일반 학교에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김씨는 "그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한다"며 "일반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단지 한 공간에 넣어뒀다고 '통합교육'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까지 버스 타고 1시간…현행법이라도 지켰으면"

특수학교를 선택해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뇌병변·지적장애 1급인 조혜원양(16)은 영등포에 살지만 한강 다리를 건너 마포에 있는 특수학교로 등교한다. 집 근처에 갈 수 있는 특수학교가 없어서다.

국내 특수학교는 특수교육대상자 수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년 특수교육대상자 8만9353명 중 30%만이 173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다. 서울시에는 장애학생 4500여명이 29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나 8개 구에는 특수학교가 아예 없다. 버스 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장애학생들이 많은 이유다.

학교가 부족하니 학급당 법정 정원도 지켜지지 않는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특수교육 학급당 인원은 유치원 4인, 초등·중학교 6인, 고등학교 7인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법정 정원을 준수하는 특수학교는 84.1%에 불과하다.

교육의 질도 떨어진다. 혜원양의 어머니 정순경씨(46)는 "장애 학생들은 장애별 맞춤 교육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하는데 교사들이 바쁘다 보니 면담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하려는 교사들이 있어도 제도가 따라주지 않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미 있는 법만 지켜도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며 "학교나 교육 기관에 당연한 권리를 말하러 가도 장애학생 부모를 '떼쓰는 사람'처럼 여기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신설은 임시방편…통합교육 가능한 세상 오길"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 지 3개월 뒤 교육부는 특수교육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전국에 특수학교 최소 22곳 이상 신설, 통합교육 거점지원센터 확대, 특수교육 교사 증원 등이 골자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특수학교 신설은 임시방편이라고 말한다. 특수 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당장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교육 체계가 없어서다. 교육은 결국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차별없이 어우러지는 통합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장애 학부모 대부분이 동의한다.

김씨는 "강서구 특수학교를 세우려고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은 사건은 통합교육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수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도 "강서구 특수학교 문제가 불거지면서 특수학교를 많이 짓는 것이 대안처럼 인식되지만 결국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질 수 있는 통합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