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순환출자 역사속으로…5년간 99.9% 사라져

공정위 세종청사 전경

재벌들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수단으로 활용돼 왔다고 비판 받아 온 '순환출자'가 최근 5년간 99.9% 해소되면서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편법적 지배력 확대 관행에서 벗어나 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24일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변동 현황'에 따르면 이달 18일 기준 총 6개 집단, 41개 고리만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가 처음으로 관련 내용을 파악했던 2013년 당시 순환출자 고리가 18개 집단 9만8758개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99.9%가 끊긴 것이다.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순환출자 고리가 사라진 곳은 롯데그룹이다. 롯데그룹은 2013년 당시 9만5033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었다. 이후 지분 매각 등을 통해 2014년 483개로 급감했고 지난해 67개까지 줄었다.

올 들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남아있던 순환출자 고리도 일거에 해소했다. 롯데제과, 롯데푸드, 롯데칠성음료, 롯데쇼핑 등 4개 상장계열사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합병하고 사업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는 방식을 활용했다.

자료제공=공정거래위원회

이후 기존 순환출자 고리 내에 있던 대흥기획, 롯데GRS, 롯데로지스틱스, 한국후지필름, 롯데상사, 롯데아이티테크 등 6개 비상장 계열사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들을 지주회사에 합병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었다.이 과정에서 과세이연 등 지주사 전환에 따른 세제혜택까지 활용하면서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사업재편에 최소한의 자금만 지출했다.


이 외에 농협(2개), 현대백화점(3개), 대림(1개) 등도 올 들어 지주회사 전환, 지분매각 등을 통해 남아있던 순환출자 고리를 전부 끊었다.

이날 현재 순환출자 고리가 남아있는 기업집단은 삼성(4개)과 현대차(4개), 현대중공업(1개), 영풍(1개), 현대산업개발(4개), SM(27개) 등이다.

이중 현대차의 경우 현재 4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남아있지만 최근 지배구조 개편 방안 발표를 통해 연내에 모두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대모비스가 기업집단의 지배회사가 되는 체제로 전환하고, 이 과정에서 현재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총수일가가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신규·강화된 순환출자 고리 3개에 대해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904만주(4.7%)를 모두 매각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에서 삼성생명보험,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으로 이어지는 4개의 순환출자 고리는 아직 남은 상태다. 이와 관련 삼성측은 "잔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할 예정이나 시기나 방식에 대해선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산업개발도 연내에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풍의 경우 6개 고리를 끊었지만 '서린상사→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로 이어지는 견고한 고리 1개가 남은 상태다. SM의 경우도 158개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했지만 여전히 27개 고리가 남았다.

순환출자 해소 사유별로 보면 최근 1년간 자발적으로 해소한 곳은 롯데그룹과 농협, 대림, 현대백화점, 영풍, SM 등 6곳이다. 법적 의무에 따라 해소한 곳은 삼성과 현대중공업 등 2곳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해소 노력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단순히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 방향에 맞춰 지배구조를 개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소유지배구조를 더 개선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나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등을 막기 위한 재벌개혁 노력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신 국장은 "지난해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기도 하지 않고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며 "실제 지배라는 막강한 지배력 행사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그런 구조로 돼 있기에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것이 소유지배구조 개선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용어설명=순환출자란 같은 기업집단에 소속된 3개 이상의 계열회사들이 모두 계열출자로 연결돼 있는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A회사는 B회사에, B회사는 C회사에, 다시 C회사는 A회사에 출자하는 원모양의 계열출자 관계다.

가공자본을 통한 총수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뒷받침 해왔고 이로 인해 소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훼손하는 출자구조라는 비판에 따라 2014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신규 순환출자나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행위가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