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택시요금 안 받을테니 취재 잘해주세요"

머니투데이

남북정상회담프레스센터(고양)=우경희

"정상회담 취재가세요? 택시비 안받겠습니다."

귀를 의심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면 욕을 덤으로 받은적은 있어도 택시요금을 면제받은 적은 없었다. 해병대 전우끼리는 요금을 안 받기도 한다는 얘길 듣긴 했다. 육군 병장 만기전역자 신분으로서 매우 생소한 상황이었다. 행사를 잘 취재해달라며 택시요금을 안 받다니. 2002년 월드컵때 이랬으려나. 1993년 대전엑스포때는 이랬을까. 아니 1988년 서울올림픽때나 이랬을까.

취재진이라 밝힌 적도 없다. 그렇다면 목에 맨 비표를 보고 아셨을까. 택시호출 앱에 킨텍스 1전시관 2홀을 찍은걸 보고 아셨을까. 생긴게 기자처럼 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으니 다들 나름 합리적 의심이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먼저 물으신다. "전세계 기자가 1000명이 넘게 모여있다면서요. 정말 뿌듯한 일이죠."

남북 정상이 27일 역대 세 번째로 만난다. 두 차례는 우리 정상이 평양을 찾았다. 이번엔 북측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 땅을 밟는다. 만찬도 같이 한다. 우리 대통령과 저쪽 최고존엄이 참석하는 만찬이다. 시간이 못박혀 나온다는건 의미있는 선언이 이미 얼개가 짜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만의 회담이 아니다. 냉전시대 종식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북과 미의 회담으로 이어지는 마중물 격이다.

누구도 속단할 수 없지만 또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게 통일에 슬쩍 다가섰다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론은 허황되지 않다. 북과 끊임없는 거래를 통해 퍼주기 논란을 종식시키는 한편 북에 자본주의의 이점을 체험시키겠다는 거다. 북도 마찬가지다. 국회의 한 정통한 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에 대해 "전혀 다른 지도자"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이 사석에서 "선대가 물려준 핵은 결국 인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생면부지 기자에게 요금을 안 받을테니 취재를 잘 해달라고 말씀하신 택시기사님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 예전과는 다른 기대감이 읽힌다. 킨텍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가 본격 가동된 26일 밤엔 국내 언론들이 대부분 철수한 자리를 외신들이 채웠다. 역사적 현장을 '페북라이브' 등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전하는 외신 기자들도 많았다. 이들에겐 모두 남북정상회담이 거대한 역사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사명감과는 별개로 지구촌 구성원으로서의 설렘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지폐 몇 장을 던지듯 건네드리고 택시에서 내렸다. 남측의 문 대통령과 북측의 김 위원장은 오늘 오전 9시30분 판문점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