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엔 '빨간날' 많은데…5월, 제대로 쉬고 계십니까

지난해 근로자의 날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공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 건설업계 대기업 4년차 사원 김모씨(30)는 지난달 30일부터 연휴를 만끽 중이다. 근로자의날(5월1일) 전날인 4월30일은 회사 전체가 '단체 연차'를 써서 맘 편히 쉬었다. 이달 5일부터 7일까지는 부산에 내려가 중·고교 동창들과 만날 계획도 세웠다. 회사에 나가는 2일부터 4일까지는 직속 상관이 쭉 연차를 쓰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서 부담도 없다.


#. 방송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정모씨(32)에게 '샌드위치 휴일'은 딴 세상 얘기다. 정씨는 근로자의 날뿐만 아니라 대체 휴일로 정해진 7일도 쉬지 못한다. 정씨는 "근로자의날 수당으로 10만원 상품권이 따로 나오지만 차라리 안 받고 쉬고 싶다"며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휴가도 '빈익빈 부익부'다. 상대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잘 지키고 연차 사용 등이 자유로운 대기업 직장인들은 5월 황금연휴를 일찌감치 계획할 수 있었다. 반면 공휴일조차 쉬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빨간날'에도 일하는 고충을 토로한다.

법상 휴일은 근로계약서 상 근로의무가 없는 날이다. 주 1회 유급휴일(일요일)이나 근로자의 날(5월1일) 등이 대표적이다. 공무원들의 휴일(공휴일)은 노사합의로 정해놔야 쉴 수 있다.

5월 공휴일과 대체 휴일, 법상 휴일(일요일 제외) 등 '빨간날'은 △근로자의날(1일) △어린이날(5일) △어린이날 대체휴일(7일) △부처님오신날(22일) 등 총 4일이다. 어버이날(8일)은 앞서 공휴일 지정 여부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으나 무산됐다.


일부 대기업들은 일주일 이상 연이어 쉴 수 있도록 휴가를 장려했다. 한화케미칼, 한화테크윈 등 한화그룹의 제조 계열사는 5월 2~4일 공동연차를 활용해 휴무하기로 했다. 효성도 2~4일에 전 임직원이 공동연차를 내고 다 같이 업무를 쉬기로 했다.

다른 주요 대기업도 전 임직원이 쉬는 공동연차는 아니지만 개인별로 자율 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최대한 휴가를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른 경우가 많다. 수도권 내 부품·소재 분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모씨(37)는 4월30일과 근로자의날 모두 출근한다. 이씨는 "근로자의날은 회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쉬라고 얘기가 내려왔지만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며 "며칠을 쉬면 업무가 밀려서 압박받기 때문에 차라리 근무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일은 하지만 수당을 요구하기도 힘들다. 5월1일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들에게는 휴무가 원칙이다. 근무자에게는 통상 임금의 1.5배를 할증 지급해야 한다.

방송업 비정규직 종사자 정씨는 "근로자의날에 비정규직도 휴일수당을 지급 받는지 전혀 몰랐다"며 "설사 알았더라도 '갑을 관계'에서 을인 나로서는 수당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근로자의날에 수당을 주지 않거나 근무를 권하는 사업자를 처벌하려면 근로자의 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의날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모든 근로자에게 해당되는 휴일"이라며 "현행법상 근로자의날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자는 최대 2000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식'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적인 해결책이 우선돼야 하지만 물질중심의 구조적·장기적·문화적 문제점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가 단기적인 경영 이익만 쫓다 보니 직원 삶의 질이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가치나 철학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번 아웃'(완전히 에너지가 소진됨)하는 직장인들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