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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가 털어놓은 자식농사의 고충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82 – 이문건 : 육아일기를 남긴 엘리트 선비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입력 : 2018.05.0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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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가 털어놓은 자식농사의 고충


“한 발짝씩 떼기는 하지만 자주 넘어지고 일어서는구나. 두 손 들고 웃으며 다가오기에 등을 어루만지고 뺨을 비벼주면서 ‘우리 숙길이’ 하고 끌어안았네.”

걸음마 하는 한 살 배기 손자를 노(老)선비는 애정 가득한 눈길로 지켜봤다. 사화에 휘말려 귀양살이 하다가 얻은 귀한 혈육이다. 외로이 지내는 처지에 그는 오직 손자 아이의 재롱을 보면서 소일했다. 아이가 앉고 기고 일어서는 기록을 남겨 애지중지하는 뜻을 담았다. ‘우리 숙길이’가 장성하여 이 글을 읽으면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되뇌면서….

요즘 사극은 건국, 정변, 전쟁 등 격동의 시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맨스를 비롯해 역사 속 개인의 일상사를 파고드는 드라마가 오히려 각광받고 있다. 그럼 친히 손자를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떨까? 더구나 양육자가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선비라면 반전의 묘미까지 더해진다. 16세기 문신 이문건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양아록(養兒錄)’에 마음대로 안 되는 육아의 고충을 한시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문건은 조광조의 제자로 조선시대 사림의 정통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정몽주, 길재,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 절의파 학통과 이황, 기대승, 이이 등 뒤에 집권하는 신진사림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1519년 기묘사화로 선비들이 화를 입는 가운데서도 그와 형제들은 꿋꿋이 스승 조광조를 조문하고 장례를 치렀다. 결국 1545년 을사사화에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승정원 좌부승지를 지낸 이문건은 경상도 성주로 유배를 떠났다.

1551년 1월에 태어난 손자 숙길은 이 핍박받는 선비에게 큰 기쁨이었다. 외아들 이온은 일찍이 열병과 풍을 앓아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아들에게서 기적적으로 혈육을 보자 그는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이문건은 금이야 옥이야 손자를 보살폈다. 젖을 떼자마자 자신의 방에 들여 끼고 살았다. 병치레라도 하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밤낮으로 간호하느라 붙어있자니 어느새 16~17일이 지났구나. 열이 불덩이 같고 물집은 곪았는데 눕혀놔도 고통스러워하고 안아줘도 아파하네. 낫게 해달라고 애원하나 구제할 의술이 없어라. 차마 보고 듣기 어렵지만 틈틈이 미음을 먹이고 어루만져 주네.”

6살에 손자가 마마, 곧 천연두로 고생할 때의 기록이다. 숙길은 아비처럼 병약한 체질이었다. 이질, 학질, 마마, 홍역을 차례로 앓았다. 오늘날엔 예방주사를 맞으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구제할 의술이 없었다. 오죽하면 정통 유학자인 이문건이 무당을 불러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었을까. 선비로서 허망한 일이었지만 병고를 치르는 아이를 보면 무당에게라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557년 아들 이온이 세상을 떠나자 이문건은 아비 잃은 손자를 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7살이면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을 나이였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 이상적인 교육목표는 인품과 학문을 겸비한 ‘군자(君子)’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과거시험을 잘 보고 관직에 진출하는 게 가문의 염원이었다. 이문건도 손자가 입신양명해서 사화로 쇠퇴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주기를 바랐다.

“손자의 지각이 날로 발달해 시험 삼아 글자를 쓰고 읽게 했더니, 혀가 짧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산만하여 잘 잊어버리고 외지 못하네. 응당 상세하고 천천히 타일러줘야지 조급하게 윽박지른다고 무슨 이득이 있으리. 때때로 나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왕왕 실수를 반복하네. 이것을 글로 써서 후일을 경계하리라.”

이문건은 어린 손자를 붙들고 날이면 날마다 책을 읽혔다. 사대부가 자제들은 보통 한문, 유학경전, 경세서 순으로 공부하는데 먼저 책을 달달 외워야 했다. 숙길은 자질이 중간 수준인데다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엘리트 유학자였던 할아버지로선 못마땅했을 터였다. 이문건은 자상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조급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윽박질렀다. 체벌의 늪에 빠지게 된 것도 그래서다.

“아이의 종아리를 때리는 건 내가 악독해서가 아니요, 아이의 나쁜 습관을 금지시키기 위해서라. 만약 악습을 금지시키지 않으면 고질이 되어 끝내 바꾸기 어려우리. 악습의 기미는 초창기에 바로 꾸짖고 금해야 하는 법이라네.”

10살 무렵에는 숙길의 종아리를 때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단오가 지났는데 책 안 읽고 그네를 탔다고, 꾸중을 했는데도 또 아이들과 어울려 놀러나갔다고 이문건은 회초리를 들었다. 체벌을 받은 손자는 엎드려 울었고, 그 모습이 가련한 할아버지는 울고 싶은 마음을 고백했다. 급기야 숙길이 반항하자 이문건은 화가 났다. 체벌은 손찌검으로 번져갔다. 손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조급증이 부른 안타까운 ‘조손갈등’이었다.

“금년에 숙길의 나이 14살이로구나. 시골 사람들이 술 권하자 부끄럼 없이 마시네. 손자 하나 이 지경으로 무심하게 행동하니 할아비 근심걱정은 나날이 늘어가네. 늙은이 자식 잃고 손자에게 의지하는데, 손자는 지나치게 술을 탐내 자주 취하네. 빈번히 취하고 토하는 걸 한탄할 수도 없으니 기막힌 운명이 얼마나 한스러운가?”

1564년 반항심과 울화를 술로 푸는 14살 손자를 보면서 이문건은 운명을 떠올렸다. 2년 후 그는 자신의 난폭함을 반성하고 숙길에게 개과천선을 당부하며 육아일기를 맺는다. 늘그막에 손자 양육의 고충을 감내해야 했던 이문건은 1567년 74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그렇다면 그의 ‘양아록’은 실패로 끝난 것일까?

숙길은 비록 할아버지의 염원대로 관직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으고 격문을 내놓으며 나름 의로운 삶을 살았다. 아마 이문건도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나 조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자식농사가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다.

권경률 역사칼럼니스트
권경률 역사칼럼니스트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5월 4일 (23:05)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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