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한나는 그냥 내 동생"…그렇게 가족이 됐다

첫째 귀한, 둘째 한결, 셋째 한나, 엄마 민선씨, 아빠 석철씨(왼쪽부터)/사진=한지연기자

"한나는 '그냥' 내 동생이었어요" 입양 과정을 꼬치꼬치 묻는 기자에게 첫째 귀한(18)이 한 말이다.


15일 저녁 7시, 경기도 과천에서 만난 한나네 가족은 붕어빵 틀로 찍어낸 듯 꼭 닮아 있었다. 발랄한 초등학교 4학년생 한나(9)는 엄마 최민선(43)씨와 쌍꺼풀진 눈이 특히 비슷했다. 끈끈한 이들에게 "당신들은 어떻게 가족이 됐냐"고 묻는 게 민망해졌다.

2009년 3월 28일, 가족들은 한나(당시 만 3개월)가 가족이 된 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빠 고석철씨(49)와 엄마 민선씨, 당시 9살과 6살이던 친자 귀한과 한결(15)이 모두 함께 보호소를 찾아 한나를 데려왔다.

2006년 과천시청에서 사회복지과 업무를 담당하면서 석철씨는 자연스레 입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선뜻 실천하긴 어려웠다. 입양아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육아에 드는 경제적 비용, 낳지 않은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인지 등 고민이 많았다.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2009년 2월 15일, 한나를 처음 만난 순간, 그 고민은 봄 눈 녹듯 사라졌다. 엄마 민선씨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순 없을지라도, 이 아이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한나는 그렇게 가족과 처음 만난 후 약 한 달하고 2주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고씨 가족의 예쁜 막내딸이 됐다.

한나와 한결/사진=한지연기자

한나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컸다. 민선씨는 "공개입양을 안하면 가족들 모두 거짓말을 해야 하잖아요"라며 "입양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는 아이가 더 건강하게 크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공개입양도 한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마음이 아픈 날도 있었다. 혈연주의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지난해 한나가 입양아란 사실을 들은 친구들이 "그럼 친엄마가 널 버린 거니?" "너네 엄마는 가짜네"라고 생채기를 냈다. 한나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민선씨는 몰래 펑펑 울었다. 하지만 한나 앞에선 초연해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자신이 상처받은 모습을 보이면 한나가 위축될까봐 걱정됐다.

정답은 하나였다. 그저 입양가족도 주위에 있는 보통의 가족 중 하나임을 알리는 것. 민선씨는 한나와 한나 친구들에게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과 출산, 또 입양이 있단다"라며 입양가족도 그저 평범한 가족이라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한국입양홍보회(엠펙)를 통해서 다른 입양가족들과 함께 교류하기도 했다. 한나가 자신만 입양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하기 위해서다. 다른 출산 가족과 같은 평범한 가족 중 하나임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그 덕에 한나는 친구들에게 "오늘은 입양가족 모임 가는 날이야"라며 자연스레 얘기하게 됐다. 엄마와 생모, 생부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레 나눈다.

한나와 함께 두 오빠도 성장했다. 막내였던 한결이는 어린 시절 갑작스레 부모의 사랑을 나눠가져야했다. 사춘기 시절 찾아온 고민도 잠시, 지금은 누구보다 한나를 아끼지만 또 티격태격하는 '현실 남매'다.

첫째 귀한, 둘째 한결, 셋째 한나, 엄마 민선씨, 아빠 석철씨(왼쪽부터)/사진=한지연기자

혈연주의로부터 비롯된 선입견은 입양가족에게 상처로 날아들었지만, 한나네 가족은 "가족은 피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입을 모은다. 첫째 귀한은 "한나는 그냥 내 동생이에요,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을 함께 나눴잖아요"라고, 아빠 석철씨는 "혈육이라도 멀리 살았다면 유대관계가 형성되겠느냐. 우리는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채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엄마 민선씨는 "한나가 언제 가장 기뻤고, 언제 슬펐는지 우리는 모두 함께 나눴어요. 한나가 좋을 땐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건 우리만 아는 거죠. 그냥 그렇게, 가족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한나와 엄마, 아빠, 두 오빠는 함께 고난을 넘기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돈도 친구도 소중하지만, 우리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는 한나의 말처럼 그들은 그렇게 '진짜 가족'이 됐다.

가족들은 한나가 막내딸이 되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은 한나가 아닌 자신들이라 말한다. 민선씨는 "한나가 없었다면 몰랐을 세상을 보게 됐어요. 입양가족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한나네 가족은 엠펙 입양가족 모임의 경기남부지역대표를 맡고 있다. 민선씨는 입양아카데미에서 지금도 꾸준히 공부 중이다.

친자인 두 오빠도 한나로부터 훌륭한 선물을 받았다. 민선씨는 "(친자 두 명은) 입양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잖아요.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가족의 꿈은 '지금이대로만' 사는 것이다. 아빠 석철씨는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없더라도 소중한 일상을 계속해서 함께 영위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나처럼 가족의 품으로 가는 입양아들이 많길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2년 입양특례법 이후 입양이 신고가 아닌 법원 허가제로 바뀌며 국내 입양아 수는 2012년 1125명에서 지난해 465명으로 확연히 줄었다. 아동인권을 보호한단 의도로 소득증명서, 건강 증명서 등 양부모에게 지나치게 까다롭고 많은 서류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입양 과정도 짧게는 10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걸려 결과적으로 입양이 더 어려워졌다.

이를 바라보는 석철씨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는 "입양 후도 아닌 사전 과정에서 이 모든걸 요구하기 때문에, 양부모가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며 "아이가 어릴 때 입양될수록 새로운 가정과 더 잘 동화될 수 있는데, 입양특례법 이후로 연장아(생후 6개월이 지나 입양을 가는 아동)가 많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입양을 고민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한나네 가족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한번 해보세요, 이 행복은 해봐야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