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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 핏줄만 '가족'이라뇨, 그럴리가요

[가족의 탄생-①]민법상 혈연·혼인만 '가족' 규정, 1000개 권리 박탈…"다양성 인정 안하는 가족주의 문제"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입력 : 2018.05.20 05:00|조회 : 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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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빨간날] 핏줄만 '가족'이라뇨, 그럴리가요
첫 만남은 2016년 봄, 한 지역 독서모임에서 시작됐다. 직장인 김성호씨(37·가명)는 기존 멤버였고, 자영업자 송희경씨(36·가명)가 새로 들어왔다. 시덥잖은 주제였음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공감대가 깊었다. 자연스레 끌렸다. 서울의 양쪽 끝을 오가며 1년여간 만났다. 헤어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두 사람은 함께 살기로 했다. 다만 결혼은 안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둘다 '비혼(非婚·결혼을 하지 않는 것)주의'였다.

지난해 가을, 김씨의 전세 계약이 만료될 무렵이었다. 송씨가 더 큰 집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김씨도 동의했다. 두 사람의 자금을 합쳤지만 원하는 집에 가기엔 약 1억원이 부족했다. 대출을 알아봤다. 금리가 치솟을 때라 저리인 정책금융이 좋았다. 그런데 상담원과 첫 통화를 하던 날, 김씨는 이 같은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혼인신고는 하셨어요?"

가족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와 자녀만 가족이 아니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쉽게 말해 '곁에 있으면 가족'이다. 피가 안 섞여도, 같이 살아도, 성별이 같아도, 이웃이어도, 사람이 아닌 동물이어도, 친구여도 가족이다.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정성껏 돌봐도 상속권 박탈"



영화감독 김조광수씨(53·왼쪽)와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34)는 2013년 9월 공개결혼식을 올렸지만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했다./사진=머니투데이db
영화감독 김조광수씨(53·왼쪽)와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34)는 2013년 9월 공개결혼식을 올렸지만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했다./사진=머니투데이db

그런데 법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법률혼 부부와 직계만 가족으로 본다. 이른바 '정상 가족'이다. 나머지는 '비정상 가족'으로 규정된다. 그리곤 사각지대에 놓이고 차별을 겪는다.

민법 제779조에 따르면 민법상 가족은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뜻한다. 즉, 혈연관계이거나 혼인으로 맺어진 사람만 가족으로 인정받는다.

이에 속하지 못한 가족들은 법적 테두리에서 소외됐다. 일단 통계부터 정확히 잡힌 게 없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점을 미뤄 추산할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5.5%에서 2005년 20%, 2010년 23.9%, 2015년 27.2%로 빠르게 높아졌다. 2035년에는 34.3%에 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실상 (혼인 가족을 제외한 이들의) 통계가 없다. 비혼 출산 비율이 약 2%인데, 그걸 보고 동거 부부를 추정할 뿐"이라며 "기존 통계는 혼인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법상 반려견은 '물건', 즉 폐기물이라 땅에 묻는 것도 불법이다./사진=뉴스1
민법상 반려견은 '물건', 즉 폐기물이라 땅에 묻는 것도 불법이다./사진=뉴스1

나머지 '비정상 가족'의 설움은 이렇다. 지난해까지 A씨(81·사망)와 B씨(77)는 '사실혼(혼인신고를 안했지만 사실상 부부)' 관계였다. 10여년 동안 A씨의 곁을 지킨 건 B씨였다. A씨의 자녀들은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하지만 A씨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재산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넘어갔다.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기 때문이었다.

'동성혼'도 마찬가지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씨(53)와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34)는 2013년 9월 공개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했다. 동성결혼을 불허하는 탓이다. 이로 인해 김조광수 커플 중 한 명이 위중하지 않은 수술을 받을 때, 배우자는 병원에 앉아 가족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 측에서 '가족이 수술에 동의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키우는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김은혜씨(38)는 지난해 20년간 키운 반려견 '예삐'를 떠나보내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장례절차를 알아보던 중 반려견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한다는 얘길 들었다. 민법상 반려견은 '물건', 즉 폐기물이라 땅에 묻는 것도 불법이라는 설명이었다.

동물장묘업체에 맡겨 화장을 했지만 상처는 남았다. 김씨는 "남동생처럼 애지중지 키웠는데 종량제 봉투서 생을 마쳐야 한다는 말에 충격받았다. 말이 되느냐"며 "그냥 반려견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아니라 1000개 권리 박탈, 낙태·미혼모 문제




[빨간날] 핏줄만 '가족'이라뇨, 그럴리가요

이처럼 법적 가족의 범주에서 제외돼 포기해야 하는 권리는 수도 없다. 정 교수는 "행복주택 신혼부부 입주자격 조건에 포용적 가족관이라 하지만, 청첩장이라도 찍힌 걸 내야만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일하는 류민희 변호사는 "가족이 인정되면 따르는 권리·혜택·의무가 10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문제도 발생한다. 혼외출산으로 인한 낙태가 대표적이다. 정 교수는 "2010년 보건복지부 연구에서 낙태 규모가 17만여건이라 했는데 10만건은 기혼여성, 7만건은 비혼 낙태"라며 "비혼 출산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이를 정책적으로 극복하려는 접근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혼모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희경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는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하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는 첫 번째 이유로 출산을 가부장적 가족제도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면 '비정상'과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꼽겠다"고 밝혔다. 실제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혼외출산에 대해 75.8%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생활동반자法' 반대 부딪혀 무산, 靑 청원도…전문가 "다양성 전제로 전환 시도"



[빨간날] 핏줄만 '가족'이라뇨, 그럴리가요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11월 혼인으로 얽히지 않는 동거 가족 구성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관계법'을 입법화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이냐'종교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그럼에도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20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동반자 등록법 촉구한다'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청원자는 "직계가족이 아니어도 나와 살고 있는, 내가 믿는 절망 속에 언제나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진정 보호자"라고 청원 취지를 밝혔다. 이에 한 달 동안 5만9611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청원에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과 지자체 조례, 기업 복지제도 등을 통해 가족의 범위를 폭넓게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과감하게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려면 가족은 혼인 중심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동성혼을 보면 세계 25개국에서 가능하고, 대만과 일본 5개 지자체에서는 이성 부부와 똑같이 보게하는 조례도 있다. 다양한 가구 형태는 이미 현실이 됐고, 한국은 흐름에서 많이 늦었다"며 "생활동반자법과 지자체 조례, 기업에서 병가·경조사 등을 통해 한국도 빨리 참여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이 보장되면 인재가 찾아올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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