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우리 아이만? 앞 집 아이도 내 자식이죠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있다. 혈연 관계가 아니라도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함께 살아가며 아이를 더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반면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 여파로 피를 나눈 가족의 벽이 더 견고해졌다. '공동체'와 '마을'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은 줄어들고 엄마들의 '독박육아' 등 육아부담은 커지고 있다.

이에 육아문제의 해법을 일환으로 '공동육아'에 부모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 아이, 너희 아이'가 아니가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생각 아래 양질의 육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성미산 어린이는 모두가 나의 아이"= '공동육아'는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뜻의 교육철학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며 자녀를 마음 편히 맡기고 교육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대두되며 제안된 대안 교육의 일종이다. 뜻이 맞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아이의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 활동에도 직접 참여한다.

성미산마을 내에 있는 '개똥이네 책놀이터' 갤러리에 전시된 어린이집 아이들의 사진. 해당 사진은 성미산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의 부모가 직접 참여해 만든 작품이다. /사진= 유승목 기자

공동육아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이다. 성미산 마을은 1994년 젊은 부모들이 양질의 교육환경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을 시작으로 형성됐다. 이들은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성미산 어린이집'을 짓고 교육·운영을 도맡았다. 부모들이 교육을 맡기는 교사는 추천과 공개모집을 통해 조합원들이 직접 결정해 채용한다. 현재 성미산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5개의 어린이집이 성미산 마을에 소속된 부모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전국적으로도 80여 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어린이집 등원을 앞둔 3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유모씨(32)는 "부모들이 직접 주체가 돼 어린이집을 운영한다면 훨씬 보람 있고 안심되기도 할 것"이라며 "'모두의 자녀'는 '모두가 형제자매'로 볼 수도 있다. 외동이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더 긍정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는 오전에 등원해 저녁 7시까지 아이를 위한 교육이 이뤄져 부모들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교육에 손 놓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은 매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월차를 내면 직접 일일교사로 내 아이 뿐 아니라 공동체의 아이들을 돌본다. 또 정기적인 부모교육과 총회를 통해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 등을 주제로 부모교육을 받고 어린이집 시설 보수 등에도 자발적으로 나선다.


성미산 어린이집을 비롯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특징은 아이들이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것이다. 선생님과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다. 이는 어린이와 교사, 부모 사이에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들'이 아닌 '모두의 부모'와 '모두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만든다.

성미산마을에 위치한 12년제 비인가 대안학교 성미산 학교(왼쪽)와 방과 후 마을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주민들이 마련한 개똥이네 책놀이터 내에 있는 아이들 쉼터. /사진= 유승목 기자

◇언제든 즐겁고 안전할 수 있게= 공동육아로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 성미산 마을의 젊은 부모들은 직접 학교를 지어 새로운 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바로 어린이집을 졸업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성미산 학교'다.

초·중·고등학교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는 2004년 성미산 마을 부모들이 기금을 모아 건립했다. 2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전 학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한다. 마을 학교인 이 곳에서 학생들은 정규 교육 과정이 아닌 자연친화적이고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을 받고 친구보다 더 가까운 형제·자매처럼 지낸다.

성미산 마을 내에는 아이들의 쉼터도 마련돼 있다. 성미산 학교 근처에는 어린이 서점으로 시작한 '개똥이네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동네 책방이자 아이 돌봄 목적으로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마련한 개똥이네 서점 지하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누구나 방과 후에 들러 즐겁고 안전한 시간을 보내고 귀가한다.

이에 대해 성미산 마을에서 공동육아로 자녀를 키운 뒤 지금은 외부인의 마을 탐방을 돕는 '사슴' 성미산 마을 길눈이 팀장은 "부모들이 직접 마련한 교육 장소와 쉼터에서 아이들이 편하게 쉬고 간다"며 "내 아이, 너의 아이 구분 없이 살다 보니 이제는 이 마을 모두가 한 가족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