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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故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을 기리며…

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입력 : 2018.05.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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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구본무 LG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사진제공=LG
20일 구본무 LG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사진제공=LG
꼭 10년 전의 일이다.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하씨 집성촌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구본무 회장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진주에서도 시골인 이 마을에는 구 회장의 모친인 고(故) 하정임 여사가 시집가기 전에 살던 어릴 적 집이 있다. 오랜 고택에 고서적들이 있던 이 집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그 지역에서는 이름난 곳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관리인 가족만이 살고 간혹 구 회장이 내려오곤 했던 곳이다.

2008년 2월 4일, 설 명절을 기해 고향에 내려갔다가 구 회장이 외가 집으로 내려왔다는 얘기를 듣고 구 회장의 외가 문 앞에서 소위 '뻗치기'를 했었다.

설명절 아침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모친의 생가를 찾았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그보다 한 달 전인 1월에 모친인 하정임 여사를 여의었다. 그런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명절에 혼자서 '단목'을 찾았던 것이라는 것은 그날 아침 그를 만난 후에서야 알았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만난 구 회장에게 "단목에는 어쩐 일이시냐"고 물었고, 모자를 눌러 쓴 채 정돈되지 않은 시골 촌로의 모습을 한 구 회장은 "어머니 생가여서…"라고 짧은 인사로 의외의 장소에서의 만남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 생가 담벼락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에는 사모정(思母井)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 회장이 어머니를 그리워해 설에 외가를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어디를 다닐 때나 격식을 차리지 않고, 수행원 없이 대부분 혼자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끝내고 내려왔을 때 청와대 경호실 쪽 후문 주차장에는 방북 후 돌아오는 기업 총수들을 맞이하기 위한 수많은 기업 의전팀 인원들로 혼잡했던 적이 있다.

당시 오너가 아닌 기업 최고 책임자로 참석했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해서도 3~4명 정도의 의전 인력이 나왔지만, 그 속에서 유일하게 구 회장은 혼자 방북 때 가져갔던 캐리어를 끌고 기자들을 피해 급히 자신의 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그의 성품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가족들 외에는 조문을 사양하는 가족장으로 치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회사에 출근할 때 늘상 지하 1층 주차장에 내려서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한 손에는 항상 신문을 들고 예의 빠른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기자가 지하 1층 주차장에 진이라도 치고 있으면 LG트윈 빌딩 건물을 관리하는 서브원 직원 1명 정도가 회장과 기자의 접촉을 제한할 정도였다. 이제는 오전 8시 40분 정도면 지하 주차장 1층에서 신문을 들고 내려 빠른 걸음으로 가는 그를 볼 수 없게 됐다.

10년 전 단목에서 그를 본 몇 년 후 곤지암에 그의 아호를 딴 화담(和談)숲이 있는 곳에서 그를 또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다. 당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같이 있던 그는 기자를 가리키며 "단목에서…"라고 말하며 인사를 나눴었다. 흔치 않았던 몇 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이러 저런 얘기를 했다.

이 외에도 구 회장을 취재 현장에서 볼 일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는 한결같은 시골 아저씨의 모습으로 기자들을 대하곤 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10월 이수영 OCI 회장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였다.

구 회장은 4월 뇌수술 후 아픈 몸인데도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를 쓰고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요양을 겸해 '단목'의 어머니 생가를 다시 찾았다고 한다. 건강이 악화돼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구 회장은 지인들에게 "다시는 단목에 못 올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아호 화담처럼 이제는 '정답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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