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 뚫은 그날..베를린구상 전에 워싱턴회담 있었다

한미정상회담 관전포인트/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네 번째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21일 오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미국으로 떠났다. 문 대통령은 현지시간 21일 오후 워싱턴D.C에 도착, 22일 미 외교안보라인 핵심인사들을 만나고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다.


한미 정상회담은 그간 세 차례 치렀지만 유독 11개월 전의 첫 회담과 유사성이 많다. 당시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구축의 '긴 여정'이 첫 발을 뗐다면 이번엔 그 여정의 성공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순간이다.


◇난기류 만난 첫 정상회담 = 지난해 6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미국방문이자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하늘 위를 날던 기내에서 약식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때 난기류(터뷸런스)를 만나 전용기가 출렁였다. 참모들이 당황하는 중에도 문 대통령은 침착을 유지하며 질문을 받는 내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과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평화로 바꾸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은 그해 7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독일을 찾아 한반도 평화 구상의 밑그림을 보였다. '베를린 구상'이다.


그런 베를린 구상은 앞서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전향적 대북정책을 펴자면 미국정부와 공조가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첫 한미 정상회담 전엔 모든 것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공조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미국행 전용기에 올랐다. 바로 그 때 진짜 '난기류'를 만났다.



난기류가 하늘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겐 각자의 취임 후 첫 만남이었다. 양 정상은 삶의 궤적과 정치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대북 공조는커녕 한미 정상이 과연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양 정상은 그러나 인간적 신뢰와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교감을 나누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전 정부의 혼란 속에 멈추다시피 했던 동맹 외교를 다시 추슬렀고, 이를 바탕으로 우려를 씻었다.

【서울=뉴시스】전신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한국시간) 미국행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06.29. [email protected]

현재 한반도 상황의 주요 키워드도 그 자리에서 처음 나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임자들이 못한 북핵 해결을 통해 위대한 대통령이 되라는 메시지를 꺼냈다. '위대한 대통령' 컨셉은 1년여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숙성했다.


◇결정적 순간, 우려를 찬사로 바꾸다= 문 대통령은 당시 귀국하면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제 그 첫발을 뗐다"고 자평했다. 이 때만 해도 시작조차 할 수 있을지 불안했던 '긴 여정'은 중간 단계를 차츰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2017년 6월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그로부터 10개월 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년 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현재 상황의 출발점이자 마중물이었다.

네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첫 회담 때와 비슷한 조건이 형성됐다. 1년 전이 난기류였다면 지금은 냉기류다.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과 북한 사이는 물론, 남북 사이에도 열기가 급격히 식었다. 비핵화의 조건과 그 보상을 두고 한미와 북한 사이 이견이 존재한다. 북한의 뒤에 있는 중국의 존재감도 크다.

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북-미 사이에 가교(브리지) 역할이 요구된다. 문 대통령의 서류가방엔 '문재인 방식'의 비핵화 대안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럼프 모델'과 미세조정을 거친 다음, 이를 갖고 북한이 테이블에 다시 나오게 하는 연쇄 중재역할이다. 이번 방미가 '브리지 외교'로 불리는 이유다.

청와대는 성과를 낼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쌓은 신뢰와 공조가 희망의 근거다. 문 대통령은 현지에서 1박만 하고 한국시간 24일 새벽 귀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