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미·중 무역 갈등…전면전 대신 물밑 공방

봉합되는 듯 보였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양측이 두 차례의 협상을 거쳐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감축과 지식재산권 침해 해소 등 큰 틀의 합의는 이뤘으나, 구체적인 방안에선 여전히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당분간 서로 전면전은 자제하면서 대신 치열한 물밑 공방과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며,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종 협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미국과 중국 모두에 좋은 거래가 되기를 바라지만,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양국 협상단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무역 마찰을 자제하기로 약속한 지 사흘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협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셈이다.

므누신 장관과 류 부총리는 협상을 통해 "중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를 상당 수준 줄이기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만들었다. 이후 미국은 1500억달러(약 161조8500억원) 규모의 관세 부과 연기, 중국 통신업체 ZTE(중국명 중흥통신)에 대한 제재 완화를 시사하고, 중국은 수입 자동차 관세 인하로 화답하면서 양국 무역 마찰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ZTE 제재 완화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 있지만 아직 거래는 없었다"며 제재 완화를 부인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301조를 할 수도 있다"며 "우리는 오랫동안 매년 (무역에서) 5000억달러(약 539조원)를 잃어왔고, 이런 상황에서의 협상은 정말 쉽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미국 무역법 301조에 따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등에 대해 대규모 관세 부과를 진행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ZTE에 대해 이란과 북한에 대한 부품 수출 혐의로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7년간 금지하는 제재 조치를 시행했으며, 이 때문에 ZTE는 주식 거래가 중단되고 주요 사업이 멈추는 등 고사 위기에 처했다. 미·중 무역 갈등의 상징적인 존재로 떠오른 ZTE는 피해 규모가 200억위안(3조39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ZTE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의회가 ZTE 제재 완화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 27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ZTE 제재 완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도 국가안보를 위협한 기업에 대한 제재 완화를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ZTE 제재는 이란과 북한에 대한 불법 수출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했기 때문이며, 행정부가 무역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 의회의 견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공화당지지 기반인 '팜 벨트(농장지대)'를 겨냥한 전술로 트럼프 대통령의 급소를 찔렀다"면서 미·중 무역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약속한 미국산 상품 확대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어느 정도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2000억달러 감축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중국이 크게 미국에 내준 것도 없으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을 이끌어냈다면서 이로 인해 중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류 부총리의 리더십이 조명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다음달 초 중국을 방문한다. 이달 초 1차 무역협상을 위해 므누신 장관 등과 중국을 찾은 지 한 달 만이다. 2차 협상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중국과 어떤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는 "추가 협상의 미래가 80세의 윌버 로스에게 맡겨졌다"면서 "지난 협상에서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 증명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