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법무·회계법인 의존하다 '아뿔싸'.."민감한 주요 현안 알아서"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사진제공=현대차그룹

"유명 외부 법무·회계법인 자문을 받는 건, 사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면피할 '보험' 차원도 있죠. 도움이야 되겠지만 비용 대비 효용이 있는지는 글쎄요."(재계 한 고위관계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전격 철회 사태가 재계의 과도한 '법률·회계법인 의존증'에 경종을 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기업들이 중요한 경영 판단을 해야 할 때 고액 수수료를 들여 외부 법무·회계법인을 활용하는 경우는 일상적이었다. 일종의 안전판 역할이다.

하지만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회사 비용이 허공으로 날아갈 뿐 여기에 책임지는 사례는 드물다. 고스란히 주주들의 손실로 전가될 수 있는 셈이다.

차라리 이같은 비용을 주주와 시장은 물론 내부와 소통하는 데 더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현대차그룹도 1년여 전부터 극소수 그룹 경영진과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및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PwC, 골드만삭스, NH투자증권 등과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극비리에 분할·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 지난 3월 28일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해외 투기자본의 잇단 공세 등으로 발표 두 달도 안 돼 무위로 돌아갔다. 현대차그룹도 "주주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동일 회계법인(삼일)이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 비율 평가를 동시에 수행해 이해 상충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2015년 삼성물산 (150,800원 ▲400 +0.27%)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미래전략실과 함께 외부 법무·회계법인 등이 실무 작업을 맡았으나, 엘리엇에 허점을 노출해 공격받았다.

합병 추진과 엘리엇 방어를 위해 합병 자문사로 골드만삭스와 크레디트스위스(CS)가, 법률 자문사로는 글로벌 로펌 왁텔 립턴 로젠 앤 카츠와 김앤장이 파트너로 나섰다.

결국 표대결에서 삼성이 신승을 거뒀으나, '초호화 외부 자문단'을 영입하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일반 송무에서도 재계는 '큰 손'으로 불린다. 특히 오너 일가의 형사사건이 걸리면 수임료는 천정부지로 뛴다.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더 명성 있는 로펌을 찾지만, 꼭 승산이 높은 건 아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김앤장을 선임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법정구속 됐다.

'비자금 수사'를 받은 태광그룹은 김앤장 소속 전관 변호인에 사건을 맡겼지만 이호진 회장은 물론 이 회장 어머니 고 이선애 상무까지 '모자(母子) 동반'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횡령 혐의 재판에서 1~3심 로펌이 김앤장·태평양·지평지성으로 각기 달랐는데 초기와 진술이 자주 번복된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단 얘기가 나왔다.

법무·회계와 다르긴 하지만 앞서 2000년대 초반 재계에 '컨설팅 펌'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하지만 '맥킨지-LG 사례' 이후 의존도가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2007년 LG전자가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은 뒤 마케팅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했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 세대 변화를 도외시하다 실기(失期)해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재계에선 외부 자문에 기대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 그룹 총수는 대형 로펌에 정말 중요한 사안은 맡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오너 일가의 민감한 정보들이 넘어갈 수 있어 이를 원치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