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새 200% 오른 국채금리… 이탈리아, 부도난 그리스 꼴 나나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이 세계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럽 3위 경제국의 정정 불안이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가부채 문제도 심각해 이탈리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던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국채금리 26년 만에 최대폭 상승…국가 신용등급 강등 위기


금융시장 정보제공업체 인베스팅닷컴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 2년물 국채수익률(금리)은 29일(현지시간) 전날보다 208% 넘게 폭등하며 2.738%를 기록했다. 1992년 이후 26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것이다. 불과 한 달 전 마이너스 0.167%에 머물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수준이다.

국채수익률이 올랐다는 것은 이탈리아 경제가 위험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 기관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현재 'Baa2'에서 'Baa3'로 한 단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수익률도 이날 3.178%을 기록하며 전날에 비해 18.5% 급등했다. 이에 따라 독일 10년물 국채수익률과의 차이도 3.2%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탈리아 대신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증시는 충격을 받았다. 대표 지수인 FTSE MIB는 지난 23일 이후 이날까지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달 초와 비교하면 12% 넘게 빠졌다. 특히 은행 등 금융주가 하락세를 이끌었다. 이웃 나라 증시도 악영향을 받았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이날 1.8% 하락했다.


◇국가부채 심각한 수준… 이탈렉시트 우려까지

이탈리아 금융시장이 휘청이는 것은 정정 불안 때문이다. 지난 3월 총선에서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연정을 구성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이탈리아 경제가 더욱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30%에 이르는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 재정이 크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체제에 비판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미 EU 탈퇴를 결정한 영국에 이어 이탈렉시트(Italexit, 이탈리아의 EU 탈퇴)까지 현실화되면 유럽과 세계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지난 27일에는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천거한 주세페 콘테 총리 지명자가 지명 수락 사흘 만에 전격 사퇴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EU 체제에 반대하는 파올로 사보나의 경제장관 지명을 거부했기 때문인데, 이에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조기총선과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면서 정국 혼란이 극에 달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고위관료 출신인 카를로 코타레릴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정국 수습을 시도했지만, 의회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크스 수석 외환전략가는 "이탈리아가 올해 여름 총선을 다시 치른다면 단일통화(유로화)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에 될 것"이라며 "그것이 금융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 사태를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제2 그리스' 될까… "가능성 크지 않아, 빚 탕감 요구할 것"

최근 이탈리아는 마치 2009년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그리스는 유로존 편입 후 경제가 악화해 채무불이행 상황에 몰렸으며 2015년에 결국 국가 부도를 선언한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이탈리아가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으며,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문제가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탈리아가 새 정부 구성 후 독일 등에 빚 탕감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10배 이상으로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지원 규모가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EU 탈퇴와 유로존 붕괴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전날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로존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국채무한매입(OMT)을 진행하겠다고 언급했다. 돈을 무제한으로 풀어서라도 금융시장 불안은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