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키우라더니…아빠는 '수유방 출입금지'

모유수유실이 아닌 유아휴게실이었지만 아빠는 이용할 수 없었다/사진=한지연기자

#3살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 A씨는 아이를 데리고 한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가 진땀을 뺐다. 아이가 배가 고파 울기 시작해 분유를 데우려 마트 유아휴게실을 찾았지만 떡하니 '아빠 출입금지'란 안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문 앞에 서 쭈뼛거리다 살짝 문을 열었지만 바로 "남자는 못 들어온다"는 고성이 돌아왔다. A씨는 결국 다른 엄마에게 부탁해 분유를 데웠고, 아이에게 먹이기까지 무려 20분이 걸렸다.

아빠와 엄마의 공동육아가 장려되고 있지만 육아편의 시설은 아직도 아빠들에게 불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시설과 대형 마트 등이 수유방 또는 유아 휴게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빠만 못 들어오게 하는 곳이 많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사회적 인프라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일 서울 중구와 용산구에 위치한 백화점·대형마트·기차역 등을 돌아본 결과 4곳 중 3곳 꼴로 아빠는 유아휴게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의 건강을 위해 수유시설 설치를 지원한다'고 돼 있지만, 아빠가 들어갈 수 있는지 등 출입에 관한 세부 규정은 없다.

수유방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마트 서울역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아빠는 수유방을 사용할 수 없다"면서도 "다른 엄마들이 없으면, 상황을 봐서 얼른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고 말했다.

5살과 2살 아이를 키우는 아빠 B씨는 "벌써 5년 동안 애를 키웠지만 아빠 육아를 배려한 곳은 단 한 곳도 본 적이 없다"며 "요즘은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생겼다지만, 분유를 수유하기 위해선 아빠도 유아휴게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역 내 아빠가 사용할 수 있는 기저귀교환대와 전자레인지. 엄마 수유방보다 열악했다/사진=한지연기자

아빠 유아휴게실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환경은 엄마 유아휴게실과 달리 열악했다.


용산역은 독립된 수유방을 엄마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아빠 유아휴게실은 고객지원실 내에 한 구석에 기저귀교환대 하나가 놓인게 전부였다. 전자레인지는 창고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용산역 관계자는 "원래 엄마와 아빠 함께 수유실을 사용하게 했지만, 엄마들의 민원이 빗발쳐 어쩔 수 없이 아빠 유아휴게실을 따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수유실 내 '모유수유실'을 개방해 두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10개월 아기를 기르는 주부 장모씨(27)는 "아빠가 수유실을 함께 쓰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다"라며 "수유실과 모유수유실을 커텐 등으로 명백히 구분하지 않은 곳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 마트는 수유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모유수유를 위해 마련해 놓은 쇼파들이 가림막 없이 정면으로 배치돼 있었다.

서울역 수유방. 아빠가 분유 수유를 할 곳은 없었다/사진=한지연기자

모유수유실로 혼동할 수 있는 '수유실'이란 이름부터 '가족휴게실'이나 '유아휴게실'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살 아이를 기르는 주부 김모씨는 "수유에 분유수유도 포함되는 걸 알면서도, 수유실에 아빠가 들어온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유아 휴게실을 이용할 땐 다른 아빠가 들어와도 괜찮았다'고 말했다.

이미화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싱글대디와 공동 육아가 늘어난만큼, 일가족 육아 친화적인 문화가 확립될 수 있도록 가족친화적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기업들, 국민들도 아빠가 주 양육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