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로 나간 해커톤 대회, 눈물 없인 못 듣는 후기

머니투데이팀이 '2018 에디터스 랩' 심사위원 스페셜 멘션으로 선발되는 순간. /사진 제공=미디어오늘

"48시간 동안 큰 방에 가둬두고 밥과 커피를 넣어주니, 뭐가 나오긴 나오더라."

그랬다. 이번엔 서울이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다. '머니투데이팀'이 서울에 이어 리스본에서 극한의 미디어 해커톤을 또 한번 치렀다. 5월30일부터 6월1일까지 열린 2018 젠 총회 에디터스 랩(editors lab) 결선무대에 한국 대표로 선 것.


젠(GEN, global editors network)은 뉴미디어를 고민하는 비영리미디어그룹으로, BBC·허핑턴포스트·MIC 등 6000명 넘는 미디어 관계자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 그룹은 매년 총회를 개최하는데, 부대행사로 미디어 해커톤 대회 '에디터스 랩'을 함께 연다. 머니투데이팀은 지난 4월 서울 예선 우승으로, 리스본 최종 결선에 출전했다.(관련기사 "언론사가 해커톤을?"…'서울 에디터스 랩' 뒷얘기)

1박2일 동안 '기자+개발자+디자이너'가 한 팀을 이뤄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물은 어떤 서비스가 될 수도, 콘텐츠가 될 수도,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올해는 포르투갈, 호주, 일본, 나이지리아 등 11개국 대표팀이 참가했다.

11개국 참가팀들이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강선미 기자

5월 29일. 본격적인 대회 시작을 하루 앞두고 참가팀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각 나라에서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긴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김과 약과를 가져갔는데, 김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예선에서 개발했던 서로의 프로토타입을 설명하고, 결선 주제에 대한 생각도 주고 받았다.


젠 관계자와의 대화,

-정말 한국 사람들은 포털에서 뉴스를 읽어? 도대체 포털은 어떤 곳이야?
-뉴스도 읽고, 야채나 과일 같은 것도 사고, 모르는 정보도 찾고, 웬만한 건 다 해.
-식료품까지 산다고? 진짜 상상이 안 된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참가자와의 대화,

-난 저널리스트야. 네 분야는 뭐야?
-우린 모든 걸 다해. 개발부터 디자인, 저널리스트 역할까지 모두.
-진짜 대단하다. 나 코딩 한번 배워보려고 했다가 바로 그만뒀거든.

올해의 결선 주제는 '올림픽 같은 큰 스포츠 행사를 커버하라'(Stay ahead of the game)였다. 스포츠라니.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다른 참가팀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래는 일본 대표팀과의 대화.

-주제 보고 완전 당황했잖아. 너희는 스포츠에 관심 있어?
-아니 전혀. 우리도 그 주제 받아보고 완전 패닉이었지. 브라질팀한테는 좀 유리할 수도?

5월 30일. 해킹의 날이 밝았다. 오전엔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기획하는 법'(Human-centered design)이라는 실습 강의를 들었다. 2명씩 짝을 지어 각 파트너를 위한 뉴스서비스를 기획했다. 이날의 모든 강의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강조했던 말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사용자가 가진 진짜 문제(problem)가 무엇인지 찾아야 해."

오전 11시 본격적인 해킹이 시작됐다. 그러잖아도 무거웠던 방 안에 공기가 한층 더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주최 측은 따뜻한 커피와 초콜릿 등 각종 간식을 끊임없이 넣어주기 시작했다. '당과 카페인은 충분해, 너희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팀이 기획한 'Reaction'. 스포츠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리액션을 모아서 볼 수 있는 라이브 방송 페이지다. 여기에 입장하기 전 응원하는 팀을 고를 수 있고(왼쪽), 40여명의 사람들이 리액션을 방송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팀의 아이디어는 Reaction. '스포츠경기 리액션 라이브 쇼'다. 스포츠경기를 보는 자신의 리액션을 라이브로 찍고, 이것을 모아서 볼 수 있는 페이지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은 '경기장만 찍는 카메라의 시선을 관중으로 돌려보면 어떨까?'라는 물음에서였다. 이것은 '중계권이 없는 언론사는 도대체 뭘 할 수 있지?'라는 문제(problem)와 연결됐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리액션을 모은 중계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2002년 월드컵 때 빨간 티셔츠를 입고 서울 광장에 모여 월드컵 중계를 함께 보았던 그 황홀한 경험을, 디지털 기술로 언제 어디서든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유정수 디자인 기자가 제시한 이 아이디어에 심기철 개발자는 '이거다!'라는 감탄사를, 나 역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표했다.

주최 측에서 초청한 멘토(Antoine Laurent)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다.

-스포츠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리액션을 모아서 보여주는 페이지를 만들려고 해. 경기를 같이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지.
-정말 흥미로워! 요즘 게임 분야에서도 많이 하잖아.

큰 그림이 그려졌지만 이것을 구체화하는데도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경기를 보는 채널이 달라서 사람들마다 싱크(sync)가 안 맞는다면? 작은 모바일 화면에 몇 명의 사람을 담을 수 있을까? 이 페이지 안에서 참가자들 간에 소통이 이뤄지게 할 것인가? 이 서비스에 어떤 저널리즘적인 가치를 담을 수 있는가? 등.

내일은 발표 준비에 올인해야 한다. 한국말로 설명하기도 벅찬 이 서비스를 영어로 그것도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심사위원들을 이해시키고, 공감시키려면 발표에도 큰 공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택한 방법은 '단순하게 생각하자'였다. 모든 사람과 조건을 만족시키는 프로토타입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아이디어와 목적만 충족하는 간단하지만 명확한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기로 했다. '이런 기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곁가지 아이디어는 모두 쳐냈다.

점심으로 제공된 샐러드, 이틀간 수십개는 먹은 초콜릿,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준비된 펜과 종이, 우리팀의 고민의 흔적이 담긴 메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강선미 기자

5월 31일. 결과물 제출 데드라인은 오후 3시 30분. 최종 발표는 오후 4시다. 본격적으로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 째깍째깍 1초씩 줄어드는 타임워치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줄어드는 시간에 압박감을 느끼던 유정수 디자인 기자는,

-다른 팀들은 밤 샜나봐요. 노트북 모니터에 결과물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너무 완벽해요!

우리팀의 자리는 맨 뒷줄 가운데. 원하지 않게 다른 팀들의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날엔 볼 수 없었던 완벽에 가까운 작업물이 눈에 띄었다. 우리팀도 밤 늦게까지 숙소 로비에 앉아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회의를 하긴 했지만, 밤을 샜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한두마디씩 오고 가던 대화는 완전히 끊겼다.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심기철 개발자도 최종 결과물을 제출할 때는 긴장한 표정이 살짝 드러났다. 대회가 끝난 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심기철 개발자는 이런 말을 꺼냈다.

-미디어 해커톤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요. 오후 1시쯤 넘어가니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뭐 하나 물어보는 데도 어찌나 미안하던지.

우리팀의 발표는 이 물음으로 시작했다. '스포츠경기 혼자보는 것과 같이 보는 것 어떤게 더 좋아요?' /사진=강선미 기자

단 한 팀의 포기자도 없이 11개팀의 최종발표가 시작됐다. 발표 순서는 제비뽑기로 선발했는데,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 우리팀은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우리팀의 발표는 이렇게 시작됐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혼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과 여럿이서 보는 것 중 어떤 게 더 좋아요?
-함께 보는 것이요!

앞선 발표에서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심사위원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 혹시 내 좋지 않은 영어발음 때문에 발표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녹으면서 눈물이 돌 뻔도 했다.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웅성웅성 심사위원들의 얘기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큰 웃음이 터진 부분은 여기.

-한국팀이 한 골을 넣었다고 가정해보죠. 위쪽에 위치한 사람들이 엄청 기뻐하는 게 보이죠? 아래쪽 사람들 얼굴은 엄청 슬퍼 보이네요. 저기 이마 위에 손 얹인 남자를 한번 보세요.

호주팀이 기획한 '스포츠 메이트'(위쪽)와 루마니아팀이 기획한 'deTour de France'.

이날 발표에서 흥미로웠던 몇 팀의 프로토타입을 소개해보자면, 호주팀은 스포츠 기사에서 사용되는 어려운 용어들을 쉽게 설명하는 툴을 만들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바로 찾아볼 수 있게 사용자 환경을 아주 편리하게 만들었다.

루마니아팀은 사이클 종목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가 3주씩 열리는 특성상 독자들은 쉽게 지쳐 흥미를 잃게 되는데 '비주얼그래픽'을 활용해 경기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도와주는 도구였다. 독자의 문제(problem)을 가장 잘 해결해준 툴이라고 생각했다.

상위에 속한 세 팀을 선발한다. 여기에 선발되면 내일(6월 1일) 젠 서밋 메인 무대에 서서 다시 한번 발표해야 한다. 이때 심사위원이 특별히 언급하는 '심사위원 스페셜 멘션' 한 팀도 발표한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주최 측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위 세 팀이 공개된 것이다. 우리팀은 아니었다. 호주, 루마니아, 포르투갈 대표팀이었다.

-심사위원님들, 이렇게 뽑지 않을 거였으면 열띤 반응을 보여주지 마셨어야죠.

리스본 코메르시우 광장에 설치된 '젠 서밋' 돔 행사장(아래)과 그 옆에 마련된 메인무대로 들어가는 입구. /사진=강선미 기자

6월 1일. 젠 서밋 메인무대에서 상위 세 팀의 최종 발표와 시상이 이어졌다. 순위권에 오른 세 팀은 추가된 24시간 동안 더 많은 준비를 해온 듯했다. 옷은 한껏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어제보다 더 야윈 모습이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 예정된 심사위원 스페셜 멘션이 발표됐다. 발표를 맡은 심사위원은,

-올해 심사위원 스페셜 멘션은 매우 놀라운 서비스를 기획한 팀입니다. 바로 한국에서 온 머니투데이팀. 축하합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우리팀이었지만, 그래도 이름이 불리니 좋은 건 좋은 것이었다. 다른 참가팀들이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까지 직접 찾아와 축하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우리팀이 무대 아래에서 축하 인사를 받지만, 내년 6월 '2019 에디터스 랩'에선 저 무대 위에서 후배들이 축하인사를 받지 않을까.

'에디터스 랩'에 한국 대표 머니투데이팀으로 출전한 강선미 기자, 유정수 디자인 기자, 심기철 개발자.(오른쪽부터) /사진=강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