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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변은 없다, 서울시장 3연임 박원순

[6·13지방선거]인권변호사에서 서울시장, 차기 대권 주자로 한발 더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 |입력 : 2018.06.14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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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동훈 기자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동훈 기자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장 당선인(62)이 6.13 지방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리고 거둔 승리다.

2011년 10월 보궐 선거로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당선인은 35·36대에 이어 37대 서울시장이 됐다. 서울시장 최초 3선 성공이다. 이로써 유력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도 올랐다는 평가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당선인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재수 끝에 들어간 1975년 서울대 법대에서 그는 입학 4개월 만에 수업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됐다.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학우의 추모식을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경찰을 본 이후 삶이 바뀐 것이다. 추모 행렬에 합류한 박 당선인은 긴급조치 9호가 적용돼 4개월 복역 후 제적 당했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박 당선인은 법조인의 꿈을 접지 못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1980년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해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모두가 원하는 검사직이었지만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박 후보는 당시 사형 집행 참관이 싫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그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영향으로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전신인 모임 '정법회'를 결성한 멤버들이다. 당시 박 시장은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90년 조 변호사가 별세하자 박 후보는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994년 귀국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1인 시위라는 당시로서는 독특한 시위문화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낙선 운동, 소액주주 권리찾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을 주도했다.

참여연대가 시민단체로서 자리를 잡자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2002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개소하면서 기부와 사회 공헌 활동가로 입지를 굳혔다.

시민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그가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였다. 당시 서울시민의 상당한 지지를 얻었던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후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유력 여당 후보인 나경원 후보를 밀어내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당시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막아내고 시장직을 사수했다.

△1956년 경상남도 창녕 출생 △경기고 △서울대 사회계열 1년 제명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변호사 개업 △단국대 사학과 졸업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재임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35대~36대 서울특별시장

진달래
진달래 aza@mt.co.kr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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