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면접관' 은행 채용비리···행장 등 38명 무더기 재판行

함영주 KEB하나은행장(62) 등 KEB하나은행의 전·현직 간부 4명이 채용비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를 포함해 KEB하나·KB국민·우리·부산·대구·광주은행 등 6개 은행의 채용비리 연루자 38명과 KEB하나·KB국민은행 등 은행 2곳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던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66)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63)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김우현 검사장)는 17일 이 같은 내용의 '은행권 채용비리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재판에 넘겨진 38명 가운데 12명은 구속 기소, 26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대부분 전·현직 인사업무 담당자였다.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 KEB하나·KB국민은행은 양벌규정으로 법인이 함께 기소됐다.

KEB하나은행에선 함 행장과 전직 부행장, 전·현직 인사팀장 등 4명이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으로 14일 불구속 재판에 넘겨졌다. 2015∼2016년 신입행원 채용에서 서류전형·합숙면접·임원면접 불합격자 19명을 합격시키고 남녀비율을 4대 1로 차별해 부당 채용했다는 혐의 등이다.

은행별 채용비리 기소 대상 건수는 KB국민은행이 368건으로 가장 많았고 KEB하나은행 239건, 우리은행 37건 순이었다. 대구·광주 은행은 각각 24건이었고 부산은행은 3건이었다. 유형별로는 외부인 청탁이 367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차별 채용이 225건으로 뒤를 이었다. 임직원 자녀인 경우가 53건, 학력 차별이 19건, 지역 우대 등 기타가 31건으로 집계됐다.

수사 결과, 일부 은행의 인사 담당자들은 은행장 등 상급자나 지인, 중요 거래처로부터 채용관련 청탁이 들어오면 별도로 청탁 명단을 작성해 전형단계별로 합격 여부 등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임직원 자녀에 대한 채용 청탁도 만연했다.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합격시키거나(KEB하나은행) △필기·면접전형에서 탈락 대상인 경우 점수를 수정하고(우리·KEB하나·KB국민·대구은행) △감점사유를 삭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합격자를 합격시키는 사례(KEB하나은행) 등이 확인됐다. KEB하나·대구은행에선 청탁 대상 가운데 은행장이 청탁을 전달하거나 관심을 갖는 지원자들은 별도로 보고해 일부 불합격자가 합격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에서는 외부 청탁자가 자신의 딸에 대한 채용을 청탁하면서 인사팀에는 ‘청와대 감사관 자녀’라고 허위로 청탁한 사례가 있었다. KB국민은행 채용팀은 한 여성지원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고 부행장 자녀로 오인해 부행장의 부탁이 없었는데도 논술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킨 후 오인 사실을 깨닫고 면접단계에서 해당 지원자를 탈락시키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2015년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전 간부로부터 딸에 대한 채용을 부탁받고 서류전형 및 1차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 그러나 해당 합격자가 대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해 사직 후 재응시하자 또 다시 서류전형 점수를 조작해 최종합격시켰다.

청탁 대상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특정 전형을 신설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은 특정 지원자를 위해 필기전형이나 실무면접에서 당초 공고하지 않았던 ‘해외대학 출신’ 전형을 별도로 신설했다. 이 전형을 통해 하위권이었던 불합격자 2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들은 해외대학 출신으로 분류된 30명 가운데 23위, 25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지원자를 위해 자격 조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대구은행은 은행장으로부터 주요 거래처 자녀에 대한 채용 지시가 떨어지자 가짜 보훈번호를 부여해 영업지원직(보훈특채) 채용 절차로 해당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하게 떨어뜨린 사례도 있었다. KB국민은행은 2015년도 신입행원을 채용하면서 서류전형 결과 여성합격자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점수를 조작, 남성지원자 113명의 등급점수를 높여 합격시키고 여성지원자 112명은 등급점수를 낮춰 불합격시켰다.

특정대학 출신을 선발하기 위해 점수를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KEB하나은행은 2013년과 2016년 신입행원을 채용하면서 실무면접에서 합격권 점수를 받은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 6명을 탈락시키고, 불합격권에 있던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 6명을 합격시켰다. 광주은행 역시 2016년 면접에서 탈락한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


채용을 로비의 도구로 활용한 사례도 있었다. 부산은행은 2015년 신입행원 채용 당시 1조4000억원 규모의 도금고 유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남발전연구원장으로부터 딸을 채용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서류전형, 필기시험, 실무자면접, 최종면접 등 모든 단계에서 점수를 조작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자 합격 인원을 증원하고, 임원 면접 과정에서 계획에 없던 영어면접까지 진행해 합격시켰다. 2013년에도 부산은행은 부산광역시 세정담당관으로부터 아들에 대한 채용청탁을 받고 시금고 재유치에 대한 청탁 대가로 점수를 조작해 해당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본인의 자녀를 직접 면접 본 경우도 있었다. 광주은행에서는 2015년 신입행원을 채용하면서 인사 및 채용부문 총괄 임원이 딸의 2차 면접에 직접 참여해 최고점을 부여했다가 적발됐다. 해당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현재 해당 은행에 근무한다고 기재했다. 인사담당자는 자기소개서 점수에 30점 만점을 주는 등 서류전형에 고득점을 부여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재판에 넘겨진 금융기관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 철저한 공소유지를 통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공공기관 채용비리 및 금융기관 채용비리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금융감독원 등 관련기관에 통보해 채용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