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곡소리'에 근로시간단축 입장 선회한 고용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 앞서 추미애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이낙연 총리, 장하성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단속·처벌을 6개월간 유예하기로 한 배경에는 근로자 300인 이상 중소·중견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부터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도저히 근로시간 단축을 두달만에 대비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20일 고용부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최대 6개월간 유예된다.

고용부는 지난 2월 28일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근로시간 단축이 현장에 원활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난달 17일 노사지원대책을 발표하고 대국민 홍보에 집중했다. 이때까지는 시행시기에 맞춰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고용부는 홍보와 함께 산업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300인 이상 사업장 전수조사를 벌였다. 은행·보건의료·ICT(정보통신기술)업종 등 근로시간 단축이 힘들다는 업계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지역별 간담회는 총 7100개 업체를 대상으로 370차례의 간담회와 830차례의 현장방문을 진행했다.

고용부의 실태조사 결과 대기업․계열사와, 공공부문은 상당부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대비가 된 것으로 파악됐지만, 300인 이상 중소·중견기업은 근로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신규인력 채용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ICT업종과 노선버스업 등에서는 신규채용 여력이 있더라도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종·지역별 간담회·설명회에서 이러한 애로사항과 함께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시행을 일정기간 유예하거나 계도기간을 부여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계도기간 설정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지난 18일 정부에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등 산업현장의 실태를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부처들도 근로시간 단축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혔다. 이미 지난달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 주재 회의에서부터 유예기간 검토 의견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이 같은 논의 끝에 20일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6개월 유예기간 검토'로 의견이 모이자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보다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셈이다.

고용부의 근로시간 단축 시행 유예는 '시정기간 연장' 형태로 진행된다. 최장 근로시간 위반 사업장이 발생할 경우 이들에 대해 곧바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현행 최장 3개월인 시정기간을 3개월 더 늘릴 수 있도록 한다.

근로감독 또는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교대제 개편, 인력 충원 등 장시간근로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법처리 과정에서도 법 위반 사실 외에도 사업주가 그동안 근로시간 준수를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해왔는지 고려해 처리할 예정이다. 근로자의 신고로 진행되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사업주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신규채용 노력을 해왔으나 사업주 의지와 상관 없는 현실적·사업구조적 문제로 인력충원에 실패한 경우에는 시정기간을 더 주고 정상을 참작하겠다는 뜻이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장시간노동의 개인·사회적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뤄야할 과제"라면서도 "일자리 창출, 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발현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 원활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노동시간 단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를 위해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산업현장의 연착륙에 중점을 두고 계도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