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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길 위의 편지]백담사에 가려거든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입력 : 2018.06.2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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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비 오는 날의 풍경./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백담사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비 오는 날의 풍경./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백담사에 가려거든 비 오는 날 가라'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같은 풍경도 환경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침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경우도 많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그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가슴에 새겨지는 '잊지 못할 풍경'은 대개 그런 환경 속에서 각인되기 마련이다.

최근에 다녀온 백담사에서도 그랬다. 그동안 백담사를 여러 번 찾았지만 대부분 맑은 날이었다. 따라서 내 기억 속에는 햇살 아래의 백담사만 입력돼 있었다. 이번에 찾아간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덕에 잊지 못할 풍경을 담아올 수 있었다.

비 내리는 백담사 풍경을 전하기 전에 백담사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백담사 입구 마을 용대2리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백담사까지 왕복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과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안내문에는 7㎞ 정도 되는 거리를 버스로 가면 약 18분 걸리고 걸어서 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써놓았다. 버스는 백담사까지 상행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다닌다.

버스를 타고 가든 걸어서 가든 백담사 가는 길에는 말 그대로 절경이 펼쳐져 있다. 깊은 계곡이 끊임없이 길을 따라 흐른다. 아니, 계곡과 내를 따라 구불구불 길이 나 있다. 이름대로 대청봉에서 시작한 물이 만드는 백(百)개의 담(潭, 작은 못)을 볼 수 있다. 물은 맑고 깊다 못해 푸르다. 어름치와 열목어가 산다는 깨끗한 물이다.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버스 안에서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리기도 한다.

백담사를 찾아간 날, 버스에서 내렸을 때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백담사 앞의 수심교(修心橋)에 들어선 순간 감탄사를 아낄 수 없었다. 거기 선경(仙境)이 펼쳐져 있었다. 비로 한껏 불어난 물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렁우렁 흐르고, 그 위로 물안개가 스멀스멀 몸을 일으켰다. 참배객이 내에 쌓아 놓은 수천 기의 돌탑들이 물안개와 어울려 환상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게다가 초여름 설악의 줄기들은 골골 마다 하얀 구름을 안고 있었다. 그 풍경이 선경이 아니면 대체 무엇을 선경이라 이를까.

그 풍경만으로 충분했다. 백담사는 들러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법. 비가 내린 덕분에 한산해진 경내로 들어섰다. 백담사는 비교적 너른 평지에 절집들이 배치돼 있어서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평상시와 다르게 고즈넉한 분위기가 한없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역시 비가 내려준 선물이었다. 절집 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여행은 어디론가 이동할 때보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그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고즈넉한 백담사 경내./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고즈넉한 백담사 경내./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지금은 절집들이 많아졌지만 백담사는 원래 큰 절은 아니었다.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647년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여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 백담사의 역사는 화재의 역사다. 일곱 차례 화마가 덮쳤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한계사 이후 비금사(琵琴寺), 운흥사(雲興寺), 심원사(深源寺), 선구사(旋龜寺), 영축사(靈鷲寺) 등으로 불렀고, 1455년 다시 화재로 소실돼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에 중건하고 백담사라고 개칭했다. 1775년에 또 불에 타서 인법당(因法堂)을 짓고 심원사(尋源寺)라 불렀는데, 1783년 다시 백담사로 바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사와 이름을 함께했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그로 인해 만해 사상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악산 자락에 묻혀있던 작은 절, 백담사가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전직 대통령이 머물면서부터였다. 자칭 일해(日海)라는 전두환 씨 부부가 머무는 동안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자주 화마에 시달려온 탓에 백담사에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유적이나 유물은 없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칠성각·선원·요사채 등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관음전이 있다. 등산로를 따라가면 다섯 살짜리 신동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견성(見性)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바꾼 오세암과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봉정암을 만날 수 있다.

'만해기념관'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서는 한용운 선사의 사상, 그가 남긴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출가와 수행, 3·1운동과 옥중투쟁, 계몽활동, 문학 활동, 신간회활동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았다. 만해가 불교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저술한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원전 등의 책, 그의 유묵과 시집 '님의 침묵' 초간본·각종 판본 등도 전시돼 있어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호준의 길 위의 편지]백담사에 가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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