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는 못 준다"는 대법원…檢, 사상초유 대법원 압수수색?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이기범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실물 등을 달라는 검찰의 요구에 대법원이 일부 자료만 골라서 내주기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증거 확보 차원에서 사상초유의 대법원 압수수색을 단행할지 관심이 쏠린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제출 가능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 중에 있다"며 "가능하면 빨리 (제출)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취재진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검찰이 보낸 공문을 검토해 제출할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며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실물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을 수 있는 자료는 사실상 제출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입장이 정리된 바 없다"면서도 "언제까지 결정을 미루고 있을 사안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대법원 측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등을 포함한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또 관련자들의 업무용 휴대폰과 공용이메일 기록,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과 관용차 운행 일지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검찰이 요구한 자료 가운데 일부만 제출할 경우 검찰이 강제수사권을 활용해 사법부의 심장부인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압수수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강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영장 청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검찰은 이번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로 재배당하며 고강도 수사를 예고한 터다. 특수1부는 검찰 최고의 특수통들이 모여있는 최정예 '칼잡이부대'다. 지난 21일 특수1부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은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이 드는 모든 파일을 열어볼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매우 강한 수사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만약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발부 여부는 판사가 결정한다. 사법부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를 사법부가 스스로 결정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대법원이 개인정보보호법 문제를 거론한 것은 사실상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묵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은 수사기관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할 때는 문제가 되지만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우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내줄 수 없으니 직접 와서 가져가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자료를 제출한다면 검찰이 수차례 더 보완을 요구한 뒤 그래도 부족할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만큼 검찰 입장에서도 사전에 최대한 명분을 갖출 것이라는 전망이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절차상 그 시점은 고발인 조사가 일단락된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접수된 고발 건수는 총 20건이다. 검찰은 이날까지 3명의 고발인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우선 대법원의 자료 제출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미리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