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머리맞댄 韓中 기업인 "보호무역주의 반대"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고위인사 대화'가 개최됐다.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최태원 SK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현 현대차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구자열 LS 회장/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한중 고위급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양국 경제계 대화 채널이 가동에 들어갔다. 첫 만남에서 우리 기업인들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반독점 조사,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 등에 있어 협조를 요청했고, 중국 측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함께 대응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이사장 쩡페이옌, 이하 CCIEE)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고위인사 대화'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 한국 측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SK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자열 LS 회장 등 15명의 유력한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중국 측에서도 쩡페이옌 CCIEE 이사장을비롯, 다이샹룽 전 중국인민은행 총재, 다이허우량 중국석유화공그룹 사장, 수인뱌오 중국국가전력망공사 회장, 리둥성 TCL그룹 회장, 라이웨이더 촹웨이그룹 회장 등 16명의 고위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양측 위원장의 모두 인사 이후 비공개로 전환해 주제 발표와 라운드 테이블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중국 측 위원장인 쩡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고 한중이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쩡 이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었다"면서 "무역 파트너들에게 철갈 알루미늄 관세 올리고,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301조를 동원해 중국을 제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G7(주요 7개국)에서 미국을 제외한 6개국이 보호무역을 엄중히 비판했지만 미국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서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주의는 글로벌 경제와 개방경제를 해치고 중한 양국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줬다"고 강조했다.

한국 측 위원장인 정 전 의장은 이어진 인사말에서 "한중 관계의 진면목은 수교 26년의 짧은 기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역사적으로 신뢰 협력이 바탕이된 든든한 이웃이며, '황하 강물이 만번 굽이쳐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는 만절필동의 순리처럼 수천년간 이어져온 역사를 지혜롭게 대처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간 거리를 좁히고 상호 신뢰 쌓아가는 데 있어 소통 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면서 "한반도 평화협력 정착 흐름에 발맞춰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 정책을 조화해서 공동번영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비공개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중국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삼정전자에 대한 반도체 반독점 조사와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협조를 요청했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사업에 대한 중국 정부와 기업의 협조와 지원을 당부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어렵게 마련된 양국간 대화 채널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장기와 단기 과제로 나눠 합동연구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측의 한 참석자는 양국 관계에 있어 정치적인 문제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 안되며,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투자를 잘 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한국기업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고위인사 대화'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글로벌 정세 및 한중 경제무역관계 현황' 주제 발표에서 "사드 이슈에도 불구하고 2017년 한중 무역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양국의 경제 관계가 긴밀해졌다"고 강조하고, "중국은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서 제대로 대접할 필요가 있고, 한국기업도 중국의 변화에 맞게 잘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양측은 이날 대화 후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내년 중 2차 대화를 갖기로 합의했다. 선언문에서 양측은 WTO(세계무역기구)의 규칙 준수를 전제로 양자 및 다자 무역체계를 수호하고 보호주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후속협상의 조기 타결 추진과 높은 수준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조기 타결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와 신남방, 신북방 전략 연계를 위해 협력, 5G 네트워크,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뇌과학 등 산업과 기술 교류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투명하고 평등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 기초인프라 및 통관 편리화 등 협력 강화, 금융 분야 협력 강화 등을 건의사항으로 채택했다.

행사 이후 한국 위원단은 리커창 중국 총리와 별도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리커창 총리는 이번 대화의 의미와 공동선언문 내용을 적극 지지하고, 행사를 정례화 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중미, 중일, 중EU 채널에 이어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4번째 반관반민의 기업인 채널"이라며 "정부나 민간의 힘으로만 안되는 일들이 많은데 정부와 민간이 함께 뜻을 모아서 건의하면 더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