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직원 양심고백 "도매상 끼고 비자금 마련"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의약품 도매상과 편법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마련한 뒤 병원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해왔다는 제약사 직원의 내부 폭로가 나왔다.

1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A사 영업직원의 폭로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직원은 도매상에 원외처방 의약품을 정상가의 30~35% 할인된 금액에 공급을 했다고 증언했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약을 650~700원에 공급하면 도매상이 약국이나 또 다른 도매상에 물건을 팔아 200원 마진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는 도매상이 이렇게 남긴 돈의 일부를 자신과 거래한 A사 지점에 돌려주면 지점 직원들은 이 돈을 병원들에 리베이트로 뿌렸다고 고백했다. 리베이트 제공 대상 병원은 의원이나 중형급이었다고도 했다.

도매상을 이용해 리베이트용 비자금을 마련하는 건 제약사들의 오래된 수법이었다. 도매상이 8~10%대 마진을 남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30% 넘게 마진을 챙겨주면서 초과 이익을 공유하는 식이다.


글쓴이는 "(도매상을 이용해) 리베이트를 하는 이유는 문제 발생시 도매상의 일탈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상세한 설명까지 달았다. 이 글에는 '언젠간 터질 일이었고 우리 회사를 넘어 업계가 바로 잡히길 응원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업계는 원외처방 의약품을 대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식은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외처방이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병원 밖 약국에서 약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도매상을 낀 리베이트는 병원 안에서 처방과 약 수령이 모두 이뤄지는 원내처방이 보통이었다. 제약사가 원내처방이 활발한 대형병원에 직접 약을 공급할 수 없는 제한요소 때문에 도매상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외처방은 제약사 영업사원의 직접 영업행위가 가능한 영역이다. 또 제약사가 직접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면 그만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글이 사실이라면 A사는 내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대범하게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뜻"이라며 "이 글이 업계에 빠르게 퍼지는 상황에서 A사를 위해서라도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A사는 내부적으로 사실 여부 파악에 나섰지만 드러난 게 없다고 반박했다. A사 관계자는 "글을 보면 회사를 고발하면서도 회사가 열심히 CP(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를 운영하고 있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며 "언급된 방식의 비자금 조성과 리베이트 제공은 회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