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영화 ‘300’의 용사 같았던

시메 브루살리코 등 크로아티아 대표팀 선수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모스크바=AP/뉴시스】

크로아티아의 준결승전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건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상대로 거둔 역전승의 짜릿함도, 월드컵 사상 첫 결승 진출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의 국가와 국민, 선수들 자신을 향한 애정과 충성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연장전 3경기를 잇달아 치르면서 고갈된 체력 대신 강한 정신력으로 투지를 불태우고, 그것도 선수 교체 하나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대회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크로아티아의 역전승(2-1)은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전투’는 영화 ‘300’의 스파르타 용사들의 그것과 빼닮았다. 크로아티아는 우선 월드컵 결승 진출국 가운데 영토가 가장 작은 데다 전체 인구도 416만 명 정도로 역대 결승전 진출국 중 우루과이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열악한 상황은 규모만이 아니었다. 대회전부터 크로아티아축구협회가 부정부패를 일삼는 등 내부 여건도 좋지 않았다.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선 공격수 니콜라 칼라니치가 교체 출전을 거부해 팀에서 퇴출되기까지 했다.


스파르타 용사 300명이 전장에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용기와 달리, 나라 안에선 의회 원로원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영화 속 장면과 다르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스파르타 용사들은 1대 100의 정신으로 100만 페르시아 대군과 맞선다.

용사 300명을 오합지졸로 취급하던 페르시아군은 예리한 창끝 공격, 방패를 참호처럼 만드는 수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협동심을 내세우는 스파르타 군의 진면목을 확인하면서 퇴각한다. 스파르타 군은 수차례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이제는 ‘역전의 용사’라 불리는 크로아티아 선수들도 마찬가지. 미드필드에서 개인 드리블은 (다른 선수가) 유효 슈팅을 하기 전까지 실패한 적이 별로 없고 골키퍼를 비롯한 수비수는 실수나 지친 체력으로 쉽게 골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전방 공격수만 열심히 뛰다 패스할 동료가 없어 허탕 치는 경우도 이 팀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 사람이 뛰면 다 같이 달려들고, 수비할 땐 너나 할 것 없이 골키퍼 주변에 몰려든다. 이 독특한 팀워크는 크로아티아가 지닌 최대의 미학이다.

메시나 호나우두, 네이마르, 손홍민을 쳐다보는 축구는 없다. 공격수가 (골을) 넣어도, 수비수가 넣어도 그들이 이름은 ‘크로아티아’로 통일됐다. 이 엄청난 국가 브랜드는 지난 2500년간 잊히지 않는 ‘스파르타’ 브랜드와 맞먹는 효력을 지닐 듯하다.

스파르타 용사들이 그랬듯, 크로아티아 선수들도 투혼과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보너스로 ‘냉정’이라는 정서적 심리를 투영했다. 그 심리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에 해당하는 즐라트코 다리치 감독의 평정심과 유사했다.

패스 시도하는 크로아티아 루카 모드리치

다리치 감독은 매 순간 노트를 펴고 기록하는 멕시코 감독의 호들갑도, 코를 파고 냄새 맡는 독일 감독의 불안함 같은 동요의 흔적이 아니라, 많은 시간 침묵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며 그 평정심을 선수에게 이입했다.

선수들은 감독의 정서를 이어받은 듯 몸은 빨랐으나 정신은 대체로 냉정함을 유지했다. 한점 빼앗긴 상황에서 감정선이 흐트러지긴 했으나,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한 곳만 바라보고 뛰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움직임은 변하지 않았다. 역전 골을 넣은 만주키치가 ‘본능적 포효’로 승리를 자신했을 때조차도 그 정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들의 냉정은 스포츠맨십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크로아티아는 조별 리그에서 보여준 일본의 나태한 승점 지키기 같은 전략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운 듯했고,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준 프랑스의 음바페 같은 얄미운 행동엔 단 1초도 사용하지 않았다. 연장 후반전이 끝나고 추가 시간 6분이 주어질 때도 그들은 전반전처럼 뛰었고, 기회를 만들어 슛을 했다.

크로아티아는 ‘모두가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특별한 팀이다. 용사 300명의 이름이 모두 기억되고 그 죽음 하나하나가 온전한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선수 11명의 투혼과 의지가 모두 온전하게 평가될지 모른다.

16일 프랑스와의 결승전의 결과를 영화 ‘300’의 결론에 대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결과가 무엇이든 또 다른 '크로아티아' 용사들은 길러지고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