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 규모는 최대, 성소수자 정책은 제자리

14일 오후 서울 광장 앞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한문 앞 도로에서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 참석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스1

14일 열린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연인원 12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하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갈수록 축제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보수·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갈등이 극심한 만큼 제도권에서 성소수자 정책도 좀처럼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소수자들의 숙원사업이다. 헌법 11조 1항에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성정체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한 이후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폐기됐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빠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발간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2014)'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3159명 중 절반 이상(53.2%·복수 응답)이 차별금지법을 가장 중요한 정책 이슈로 꼽았다.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도 혐오 표현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동성애자가 사회로 들어온다고 하니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드는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은 혐오 발언의 기준점을 제시해주고 문제가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에 있는 '양성평등' 문구를 두고도 논란이 크다. 헌법 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개헌 논의 당시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바꾸는 안이 논의됐지만 결국 대통령 개헌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헌법에서 성평등으로 용어를 바꾸면 다양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과 동성혼을 합법화할 가능성이 생겨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맞붙고 있다.

지난해 동성 간 성관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A대위 사건으로 관심을 받은 군형법 92조 6항도 주요 쟁점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3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하라는 지시의 명분이 된다"며 군형법 92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을 폐지하면 군 기강이나 전투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대도 거세다.

전문가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험상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면서 개방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며 "본인 노력과 인권단체의 지원을 토대로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여러 어려움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성소수자의 권리라고만 접근하면 왜 그 사람들의 권리만 보장하느냐는 반론이 나온다"며 "차별금지법이 보편적 인권보장을 위해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성애 반대도 권리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제양규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교수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반대하면 혐오·차별이니 이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며 "성경에 따라 (동성애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다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길 법무법인 INS 변호사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동성애를 할 권리는 있지만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것은 건강한 성 윤리를 훼손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며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신앙의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