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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방금 태어나고, 지금 막 버려진 사람

<151> 이난희 시인 '얘얘라는 인형'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07.14 08:35|조회 : 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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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방금 태어나고, 지금 막 버려진 사람

2010년 '시사사'로 등단한 이난희(1961~ ) 시인의 첫 시집 '얘얘라는 인형'은 마치 잔혹동화를 읽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냥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해피엔딩(happy ending)이 아니라 학대당하다가 끝내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하고야 마는 새드엔딩(sad ending)의 동화. 슬픈 결말에 이르기 전,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성장과정은 '꿈이었으면…' 할 만큼 고통스럽다. 시인은 동화보다 더 참담한 현실과 사회부조리를 동화적 기법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을 넘어선 연대가 없으면 쓸 수 없는 시들이다.

피가 돌지 않는 저녁이다. 기울어진 구름 뒤로 저린 새끼손가락이 떨어진다. 먼 지평선을 지나온 자장가에서 혓바늘이 돋는다.

밥상은 언제 차려지나요, 나란한 식판 너머 소년이 물었다. 3일 동안의 밤, 3일 동안의 별, 3일 동안의 기다림이 덜그럭거린다.

누구의 밥그릇도 아닌 식판에서 눈물이 되어 버린 국물이 글썽거린다. 저린 손가락을 풀며 소년은 맞은편 눈동자를 바라본다. 내 검은 섬도 그렇게 흔들리겠구나.

곧 데리러 올 거야
곧 데리러 올 거야

탁란의 주술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소년은 꺾어 온 야생화를 울타리 밖으로 던진다. 페노바르비탈, 넘어지려는 불안을 그대로 두세요. 기울어진 몸으로 소년은 발작하는 저녁을 누른다.
- '흔들리는 저녁' 전문


시 '흔들리는 저녁'은 부모(보호자)에게 버림받은 뇌전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꼭 데리러 오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부모는 나타나지 않고, 저녁밥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밥을 주지 않는다. "피가 돌지 않는"다는 건 아이가 그 집안에서 버림받았다는 것을, "먼 지평선을 지나"왔다는 건 소년을 다시 데려갈 마음이 없는 부모가 의도적으로 먼 시설에 맡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3일 동안의 기다림"은 3일 후에 데리러 온다는 약속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3일 동안 굶었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리움과 기다림, 배고픔으로 아이들은 눈물범벅이 된다. 손가락이 저릴 만큼 오래 그 자세로 앉아 있다. 문득 "맞은편 눈동자를 바라본" 소년은 이미 섬처럼 고립된 자신도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즉 데리러 온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평생 여기서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현실인식이다. 4연의 "곧 데리러 올 거야/ 곧 데리러 올 거야"는 기다림의 희망이라기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강한 자기부정이다. 소년은 자신을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주기 위해 "꺾어 온 야생화를 울타리 밖으로 던"짐으로써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포기한다. 남은 것은 "넘어지려는 불안"과 "발작"이다. 참 그로테스크한 저녁 풍경이다.

가위바위보
나는 숨어 있는 사람

누가 술래인 줄도 모르고 숨어들 때
함께 사라지고 싶은 것들
꽃들의 심장 소리 함께 듣는다

햇살 내려서고 그늘 뒷걸음쳐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나는
방금 태어나고, 지금 막 버려진 사람

공중의 물방울 내려와 식어 간 탯줄 덮을 때
굳어 가는 내 잠을 시작으로 쥐눈이콩 서리태 울금까지
하얗게 지워진다

싱싱한 울음으로
배고픈 나는 떨어진 꽃망울을 물고 잠이 든다
자라지 않는 내 맨발은 날것들의 소란으로 근질거려

왜 아무도 날 찾지 않나

벌판에 서서, 구름에게 들키고
하얀 국화 향에 취해 재채기를 하고 싶지만
나는 숨어 있는 사람

아무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
허허벌판에 눈을 가리고 이제부터 내가 술래

당신이 찾을 때까지, 악몽은
찬 발 앞에 엎드려 나를 은폐한다
- '첫서리' 전문


'첫서리'는 태어나자마자 벌판에 버려진 신생아의 입장에서 쓴 시다. 나는 "누가 술래인 줄도 모르고 숨어" 있는 사람이다. 아니 아무도 모르게 벌판에 버려져 죽어간 생명이다.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벌판 꽃들 속에 버려져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하필 그날은 첫서리가 내려 "쥐눈이콩 서리태 울금까지/ 하얗게 지워"지고, 나는 하얀 잠(죽음)에 빠진다. 벌판 위를 흘러가는 구름이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하얀 국화 같은 자연물도 나를 찾지만 오직 사람들만 찾지 않는다. 꼭꼭 숨어 있는 날 나를 찾지 않으니 "이제부터 내가 술래"가 되어 "당신"을 찾아 나선다. 이 모든 "악몽" 같은 상황은 당신이 나를 찾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젓나무가 한껏 몸을 열어 수백의 유두를 내민다 높은 지붕 위에도 끊임없이 돋아난다 말을

모르는 어린 별들 소리 없이 내려온다 종소리가 퉁퉁 불은 젓나무의 젖샘을 문지르며 수유 시간을 알린다

귤 상자에서, 컨테이너 옆 담벼락에서, 검은 비닐봉지에서, 공중전화 부스에서, 길바닥에서, 쇼핑백에서, 헌옷수거함에서, 공중화장실에서

탯줄에 매달린 울음이 도착할 즈음

깜빡 생각난 듯
젖꼭지를 입에 문 어린 별들
콩나무 줄기 같은 사다리를 오른다

아직
온기가 남은 울음을 쥐고

다시 태어난다
- '크리스마스트리' 전문


이난희의 시에서 가해자나 인위적인 것들은 어른들의 세계와 연관되고, 이는 부정적인 세계인식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변호하거나 같이 눈물 흘린다. 구체적으로 "귤 상자에서, 컨테이너 옆 담벼락에서, 검은 비닐봉지에서, 공중전화 부스에서, 길바닥에서, 쇼핑백에서, 헌옷수거함에서, 공중화장실에서"(이하 '크리스마스트리') "깜빡 생각난 듯" 생겨난 인위적인 것들과 유아 성폭력 피해자('우리 동네 아저씨'), 악덕 기업주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어린이('쉬반의 신발'), 지하철에서 앵벌이 하는 엄마의 등에 업힌 아이('놀이터'), 철거를 반대하다 잡혀가 고문당하는 사람('오월의 집'), 지하철 계단에서 더덕을 파는 여자('삽니다'), 천륜도 거부하는 한센인('스티그마-옥에게'), 세월호 참사로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을 떠난 아이들('종이꽃 리스-팽목항', '가만히 있는 4월'), 그리고 "방금 태어나고, 지금 막 버려진" 입양아와 고아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시인은 시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시인은 의도적으로 전나무를 '젖'과 발음이 유사한 '젓나무'로 표기하고, 젓나무를 여성의 몸으로 대치한다. 생명이 있는 것을 인위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와 의식에 대한 거부하고, 여성성을 통해서 생명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난희의 시에서 말(언어)과 울음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영혼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잠과 꿈은 불편부당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일시적이고도 임시적인 수단으로 사용된다. 시인은 일찍이 깨닫는다. 위로의 말이나 함께 울어주는 것, 혈육이 아닌 타인의 사랑만으로는 이들의 상처를 감싸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에 시인은 "찢긴 이파리가 제 심장을 마저 떼어 주는 그 순간"(이하 '숨')의 "평화"를 매개로 하여 "신의 세계에 도착"한 불쌍한 영혼들이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한다. 간절히, 시인의 시처럼.

◇얘얘라는 인형=이난희 지음. 파란 펴냄. 151쪽/1만원.
[시인의 집]방금 태어나고, 지금 막 버려진 사람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7월 13일 (09:19)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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