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와 반대 사이에 선, 역대 최대 '퀴어문화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광장을 출발해 도심을 한바퀴 도는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역대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행사인 '2018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거리로 나온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당당히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으로 퀴어문화가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총 12만명의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부스행사 4만5000명, 퍼레이드 6만명, 축하무대 1만5000명 등이다. 2000년 처음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불과 50여명이 참여했지만 매년 참가자가 늘었다.

올해는 '당신의 주변(Around)에 항상 성소수자(퀴어, Queer)가 있다'는 뜻의 '퀴어라운드'(Queeround)를 슬로건으로 다양한 무대공연과 부스 행사 등이 진행됐다. 이날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머리를 형형색색 물들이기도 하고 다소 과한 분장으로 주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다양한 무지개 소품을 이용해 동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늘(활동명)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는 "누구나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의 시경 스님도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퀴어 축제를 처음 찾았다는 김모씨(19)는 "평소에는 조심스럽게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현장에 나왔다"며 "이성애를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퀴어 문화를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대중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서울광장에는 성소수자 외에도 많은 일반 시민들이 찾아 '성적 다양성 존중' 의사를 드러냈다. 미국 대사관은 3년 연속 축제에 참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무지개 깃발을 건물에 내걸었다.

전국의 성소수자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올해 대구와 부산, 제주 등 7개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다. 이 같은 축제는 미국 등 서구권 국가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매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San Fransisco Pride)는 세계 최대 퀴어축제로 매년 백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다.

14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뉴스1

국내에서도 사회 분위기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는 가운데도 퀴어축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소수의 문화를 외설적 표현 등으로 알리려 하다 보니 사회 규범을 해친다는 우려다. 실제 이날도 퀴어축제가 한창인 서울광장 주변에서는 다양한 맞불 집회가 열렸다.

퀴어문화축제는 2014년 신촌·홍대,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대규모로 치러지며 외설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퍼레이드에서 상반신을 노출하거나 속옷만 입은 참가자들의 사진이 온라인상에서 퍼지기도 했다. 올해 퀴어축제가 열린 서울광장 주변에 철제 펜스가 세워진 것도 반대 단체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날 7000여명이 참여한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퀴어반대위)는 "동성애자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지만,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법적·도덕적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서울의 중심에서 음란한 물건들을 전시·판매하고 미성년자까지 음란한 행위에 노출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글이 올라와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청와대는 퀴어축제의 개최와 서울광장 사용이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주최한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성소수자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사회에) 인지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반대 단체 측에서) '왜 나서느냐'고 말하는 것은 사회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그 자체로 계층화, 혐오 표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가운데서도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성소수자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통상적 수준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행태를 할 수 있지만 아직 괜찮은 수준이라고 본다"며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성소수자들이 내부의 극단적 태도를 자정해 나갈 수 있도록 하면 우리 사회의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좋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다"며 "시간을 두고 대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성소수자 문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