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최임委의 반쪽 속도조절론 반영된 내년 최저임금 8350원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내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장에서 열린 15차 전원회의를 마친 뒤 최저임금 투표 결과가 적힌 칠판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우여곡절 끝에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상 처음으로 경영계가 빠진 채 '반쪽짜리' 최저임금위원회가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그동안 여러 정부부처 인사들이 주장한 '속도조절론'이 일부 반영되긴 했지만대통령의 공약후퇴라는 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들의 경영난과 고용 위축을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됐다.

지난 14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전원회의에는 류장수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 9명 전원과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5명만 참석해 의결했다. 업종별 구분적용 부결에 반대하는 사용자위원 9명 전원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불참했다.

사상 최초로 경영계가 빠진 채 진행된 심의과정에서는 결국 정부안과 한국노총안의 대결이 벌어졌다. 그동안 최임위 심의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최초제시안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었지만, 이번 심의에서 경영계 제시안은 지난 5일 나온 '동결 및 업종별 구분적용' 외에는 없었다.

김성호 최임위 부위원장은 "그동안 심의 과정에 참여하던 근로자·사용자위원들이 여러 차례 수정안을 제출하다가 마지막 표결에 불참한 적은 자주 있었다"면서도 "올해처럼 한 축이 없어진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결정한 적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공익위원들은 정부의 속도조절론을 반영해 10.2% 인상안을 최초제시했다. 한국노총 근로자위원들은 지난 5일 제시했던 43.3% 인상안을 통해 내년에 즉시 최저임금 1만원을 넘기자고 주장했으나 한차례 내부논의를 거쳐 15.3% 인상안을 1차 수정안 및 최종제시안으로 내걸었다.

공익위원들 역시 한발 물러나 최초제시안보다 0.7%p만 높인 10.9% 인상안을 최종안으로 내세웠다. 결과는 8대 6으로 공익위원안인 10.9% 인상이 채택됐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인 '2020년 1만원'을 1년 가량 늦추는 효과가 있다.

공익위원 1명의 이탈표는 그동안 정부가 공익위원들에 대해 영향력을 미친다는 문제제기를 반박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공익위원 위촉 권한이 정부에 있고, 대부분의 공익위원이 친정부 성향으로 구성된 상황에서도 이들은 독립성·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됐다며 정부 개입설을 반박해왔다.

이들은 실제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이 수차례 언급한 속도조절론에 따른 인상률을 1~2차 제시안에 반영했다.

즉 정부는 '2020년 1만원 달성'에서 한발 물러나 9.5% 인상률이 적합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등의 반발이 있을 경우 두자릿수 인상률이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해 9.5~10.5%의 인상률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위원들의 1차 제시안은 정부의 시뮬레이션 범위 안에 들어오는 10.2%, 2차 제시안이자 최종안은 이와 유사한 10.9%였다. 10.9% 인상안에는 협상에 성실히 참여한 측에 주는 인센티브격인 관행적 협상배려분 1.2%가 포함됐다. 이를 제외하면 9.7% 가량이 정부의 산출 근거에 기초한 인상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로는 2년 새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에 따른 영세사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2011년 432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8년만에 2배 가까이 치솟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폭이 큰 게 올해(16.4%, 1060원)와 내년(10.9%, 820원)이다.

이 때문에 류장수 위원장은 지난 13~14일 연이어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연이어 선보일 예정인 가운데 산업현장에서는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 등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간신히 과반수를 넘겨 구성된 최임위에서 정부의 의지를 반영해 결정한 내년도 최저임금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영세사업자들을 달래기 위한 정책적 지원들이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