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빼고 세계가 FTA…트럼프 보호주의의 역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차별적인 '무역 공격'으로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각지에서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는 나라들끼리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보호무역주의에 반격하는 것이다. 미국을 포위하는 거대한 자유무역권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전날 FTA의 일종인 경제연대협정(EPA)을 체결했다. 양측이 90% 이상의 상대국 제품에 대해 관세를 낮추거나 아예 없애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번 협정으로 세계 국내총생산의 30%, 무역 총액의 40%를 차지하는 거대 자유무역권이 탄생하게 됐다.

이번 협정 체결은 양측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일본과 EU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간 무역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보호주의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보호주의를 자유무역으로 막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일본 전자업체 히타치제작소 회장이자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인 나카니시 히로아키는 "무역 장벽을 만드는 관세 전쟁은 경제적 반달리즘(파괴 행위)"이라며 "(FTA로) 반대의 흐름을 만드는 것은 매우 큰 성과"라고 말했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현재 11개국이 참가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회원국 확대도 주도적으로 추진한다. 이미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17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CPTPP 수석 협상관 회의가 진행 중이며, 회원국 확대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CPTPP에 관심을 표명한 나라는 한국, 태국, 콜롬비아, 영국 등이다.


아시아 지역을 하나의 거대 경제권으로 묶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출범할 가능성이 커졌다. RCEP는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6개 나라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이 참가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2012년 11월 첫 협상이 시작됐다. 그동안 참여국간 복잡한 이해관계와 뚜렷한 주도 국가가 없어 협상에 난항을 겪어왔지만, 최근 미국발 무역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높은 수준의 협상 타결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EU는 지난달 호주, 뉴질랜드와 FTA 협상을 시작했으며, 남미 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Mercosur)와도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메르코수르에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정회원국으로 참여 중이다. 또한 2009년 중단됐던 EU-아세안 FTA 협상도 최근 다시 시작됐다. 이밖에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가 참가하는 '태평양동맹'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준회원국과 무역 확대를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중국은 연내 이스라엘, 스리랑카, 파키스탄, 싱가포르 등과 FTA 체결 또는 개정 협상을 추진한다. 그동안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한·중·일 FTA도 올해 들어 다시 추진에 탄력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미국을 둘러싸듯이 거대 자유무역권 구상이 꿈틀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는 나라들이 다른 지역과의 FTA를 지렛대로 위험 부담을 낮추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로이터통신도 "세계 주요 경제권은 미국이 있든 없든 자유무역정책의 꾸준히 추진할 것"이라며 "미국이 가야 할 길이 '고립'은 아니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