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특별법은 남편보호법? 솜방망이 처벌에 우는 아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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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2016년 3월 A씨(58)는 남편 B씨(61)에게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검찰은 남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씨를 돌볼 보호자가 없다"며 기각했다. 두 달 뒤 A씨는 남편에게 다시 폭행을 당했고, 이 때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은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며 기각했다. 같은해 7월 남편은 결국 A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국가에서도 신경써야 할 범죄행위로 불거지면서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1998년 7월 1일)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이후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사건은 줄곧 늘고 있지만 오히려 가해자 처벌은 약해지는 추세이고,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발생 건수(2016년 기준)는 4만5619건으로 2015년(4만828건)보다 11.73%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만7557건 수준이었던 2014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가정폭력 관련 검거인원도 5만3511명(2016년 기준)으로 전년(4만7543명)보다 12.55% 증가했다.

동거 친족 간 살인 건수도 2013년 163명, 2014년 185명, 2015년 198명으로 늘었다가 2016년 170건으로 소폭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1998년 전에는 가정폭력은 사생활로 치부되고 경찰이 개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이후 신고율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아닌 가정 유지 우선…상처만 남은 피해자들

가정폭력 범죄의 규모는 늘고 있지만 가정폭력사범의 기소율과 구속률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2011년 18%에 달했던 기소율은 2016년에는 8.5%까지 하락했고, 구속율은 0.9%에 그쳤다. 그러나 가정보호사건(가정폭력 사범을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통해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을 보호하는 것)으로 처리하는 비율은 38.2%에 이른다. 즉, 검사가 사건의 절반 이상을 Δ혐의없음 Δ증거불충분 Δ기소유예 등 불기소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가정폭력 사건이 형사처분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이 되는 건 피해자 보호가 아니라 해당 법률의 근거인 '가정 유지' 목적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을 다룰 때 '가정 내 보호'를 최우선으로 보고 수사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특례법 전반이 가정보호와 유지에 있다보니, 가정폭력을 여전히 '가정 내의 경미한 범죄'로 여기는 심리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고 했다.

2008년에 처음 시행된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가정폭력 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가 가정폭력을 범죄행위가 아니라고 여기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가해자가 가정폭력 관련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제도다.

◇용서 받지 못한 '남편 죽인 아내'…정당방위 인정 1건도 없어

대법원은 37년간 함께 산 남편을 살해한 아내 김모씨(61)에게 지난 2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먼저 때린 건 남편이지만, 아내 김씨가 주장한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 김씨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지만 '심신상실'도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뿐 아니라 매를 맞다 끝내 남편을 살해한 여성의 정당방위가 국내에서 인정된 사례는 없다.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에 따르면 1990년부터 올 7월까지 관련 판례에서 '정당방위'로 형사책임을 면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여성 10명 중 4명(44%)이 '정당방위', '과잉방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한 차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폭력 끝에 아내가 사망하면 상해치사죄가 적용되고, 반대로 남편을 죽이는 아내는 살인죄가 되곤 한다. 수석(壽石)으로 남편에게 수십 회 내려친 김씨 사례에서도 살인의 의도, 즉 고의성이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주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을 때는 살인 의도가 없고 고의적이지 않았지만, 아내가 살해를 범했을 땐 고의성이 있다는 얘기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혜화역 시위'에서 여성들이 불법촬영 등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편파수사를 비판하면서 이 같은 판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아내를 숨지게 한 남편에 대한 처벌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약한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인권단체 관계자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사건은) 고의성보다는 공포심 때문에 생기는 방어행위"라며 "공포 때문에 인명피해가 생기는 상황이라 재판부나 수사기관의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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