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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늘 나를 받아준 몸, 미안하다

<152> 채재순 시인 '복사꽃소금'

시인의 집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입력 : 2018.07.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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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늘 나를 받아준 몸, 미안하다
아픈 시집이 있다. 읽다 보면 몸과 마음이 아파와 슬며시 시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그런 시집이 있다. '복사꽃소금'이라는 네 번째 시집을 낸 채재순(1963~ ) 시인이 그렇다. '지병'을 앓고 있는 시인이 "상처 물어뜯으며 으르렁거리는 세상"('십일월')을 살아가다 보니 마음은 폐허가 되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시인은 "가장 멀리까지 울려퍼질/ 마음의 고동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를 달래"('오른손 달래려 살풋 앉은 왼손')고 있다.

독을 쓰며 살아왔다

이제, 눈독들여온 것에서 벗어나야 할 때

치열한 삶이 아름다운 생이라고 말하지 마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마라

늘 나를 받아준 몸

언젠가 이런 말 하게 될 줄 알았다

미안하다

- '지병' 전문


이 눈보라를 뚫고 기어코 가야 할 곳 있네
길인지 나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눈 오는 밤길
눈발이 화살처럼 내 눈을 향해 퍼붓는데
홀로 눈보라 속을 달려가네
눈구덩이에 빠진 마음은 꽁꽁 얼고 있는데
들이치는 눈보라 맞으며
좀체 그칠 기미 없는 이 한밤을 가고 있네

- '눈보라' 전문


"독"은 독(毒)이면서, 병(病)이면서, 약(藥)이면서 욕심이다. 내 몸에 병이 생겨 치유를 위해 쓰는 독한 약도 결국 독이다. 강원도 속초·고성·양양 지역에서 30여 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과는 병이다. 아픈 사람에게 "아름다운 생"은 없다.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마라"는 간절한 소망이라기보다 내가 내 마음에게 하는 호소이면서 명령이다. 몸이 아파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프기도 하다. "늘 나를 받아준 몸"에게 "미안하다" 하는 것은 '마음의 병'으로 인해 '몸의 병'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무너지는 법이다. 그나마 몸이 견뎌주었기에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는 시 '눈보라'처럼 아픈 몸이지만 절망하지 않겠다는, 병에 굴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한치 앞도 안 보일 만큼 몰아치는 한밤의 "눈보라를 뚫고 기어코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단순히 삶이 목적이라면 "눈발이 화살처럼 내 눈을 향해 퍼붓는데/ 홀로 눈보라 속을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서'에서 "시여 고맙다. 지금껏 나를 살린 것들아. 넘어지면 일으켜주며 함께 가자"고 말한 것과 한밤에 "홀로 눈보라 속을 달려가"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고통스러운 창작의, 시인의 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후반생 지점"('단풍')을 통과한 시인은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빛"('단풍')남을 알기에 시작(詩作)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 쓰기는 도전이면서 삶의 위안이라 할 수 있다.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한 때는 우렁찬 한 그루 느릅나무였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힘을 준 적이 있었다. 거뭇거뭇해진 동문들이 동문회가 열릴 때마다 우러러보곤 했다.

봄이면 어린잎들이 제법 기운을 북돋아보긴 하지만 가지 끝까지 살리기엔 역부족. 동문회와 학교 측에선 교목 살리기 대책위원회를 열었다. 태풍에 부러진 가지에 곰팡이 살고 있지만 두 팔 치켜들기조차 힘들게 되었지만 교목이라는 이름으로 모셔지고 있다.

어느 봄 꾸벅 졸다가 잎 틔우는 일을 놓쳐버리고 싶다. 연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전할 수 없는 날들이 가고 있다. 살랑 바람에도 움찔할 때가 있다. 왼쪽으로 기운 채 걸어가는 노인에게 눈이 간다. 기우뚱한 몸으로 비지땀 흘리며 서쪽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 '교목' 전문


1994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채재순 시인은 현재 복사꽃마을이 있는 양양 한남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때는 우렁찬 한 그루 느릅나무"는 이 학교의 '교목'일 수도 있다. 시인은 이 학교의 '장'(長)이고, 교목 느릅나무는 이 학교의 '상징'이다. 시인은 "태풍에 부러진 가지에 곰팡이 살고", "두 팔 치켜들기조차 힘들게" 된 교목 느릅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할 만큼 호되게 병을 앓고 난 시인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고, "거뭇거뭇해진 동문들이 동문회가 열릴 때마다 우러러보곤 했"지만 지금은 "살랑 바람에도 움찔할 때가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다. "기우뚱한 몸으로 비지땀 흘리며 서쪽을 바라보는 일"도 부쩍 많아졌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마음이다. 강해졌다가 약해지고, 약해졌다가 다시 강해지기는 것이 마음의 속성이다. 하여 시인은 "자꾸 눕고만 싶어지는 마음"을 "질끈 동여매고 지내"('끈')거나, "우리 마음에 있"('단풍')는 신에게 기대거나, "간절한 마음으로"('우여곡절') 눈물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거나, "봄이 온 걸 몸이 알고 마음이 파릇파릇해"('우수 즈음')지기를 기다리지만 "마음은 이미 첩첩산중"('살')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너를 두고 가차없이 돌아설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 수런거려
나뭇잎 만지작거리게 하던 나날들
구절초 할 말이 많은 것처럼 피어나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나를 그만 놓칠 것 같아서
어느 날 비로소
나뭇잎 한 장 들고 가는 길

- '나뭇잎 사랑' 전문


시인의 주석에 의하면, 중국 윈난성에 사는 모수오족은 결혼한 여성이 남편과 헤어지고 싶으면 나뭇잎 한 장을 남자의 손바닥에 얹어놓으면 그만이란다. "당신의 사랑이 이 나뭇잎처럼 가벼워졌어요"라는 이별 선언이라는 것. "너를 두고 가차없이 돌아설 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시인은 "나뭇잎 한 장 들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를 그만 놓칠 것 같은" 상황에 이르러 비로소 이별하려는 대상을 누구일까. 대상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짐작할 수 있는 건 그 끝에 시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몸과 마음이 아픈 시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스스로 답한 위로이며 위안이다. "꽃 피어 있는 동안은/ 매일 저녁 손님이 도착"('용담여인숙')하듯, 시인에게는 다시 시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 "맨발인 마음"('자서')으로 시를 찾아 나설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흰긴수염고래처럼 "아주 오래, 천천히"(이하 '흰긴수염고래') "칼칼한 목울대 다듬으며 망망대해"로 헤엄쳐나갈 것이다.

이번 생은 살 만하였으며
파도도 견딜 만했다고
아득히 정신을 놓고 싶을 때 없지 않았지만
뒤돌아보니 꿈결이었노라고

- '흰긴수염고래' 부분


◇복사꽃소금=채재순 지음. 북인 펴냄. 128쪽/8000원.


[시인의 집]늘 나를 받아준 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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