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경영참여'로 급선회한 까닭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과 관련,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대해 제한적 허용으로 선회한 배경은 시민단체 반발과 실효성 문제가 고려된 결과다.

◇경영참여 카드 쥐고 있어야 대화로 해결= 당초 정부 원안은 경영참여를 유보하고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는데, 결국 처음부터 경영참여를 허용한 뒤 법적·제도적 여건을 보완하자는 시민단체 등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는 쪽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이 같은 방향 선회는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주주로서 개선을 요구하려면 현 상황에서는 대화 외에는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짠물 배당을 하는 기업을 일반에 공개하거나 횡령, 배임 등을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해 해당 기업과 1년간 비공개 대화한 후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기업명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사 선임 반대 등 의결권 행사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역시 소극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의안분석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주주권 행사가 경영 참여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압박을 느껴야 해당 기업이 국민연금의 대화 요청에 성의를 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참여 카드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과의 대화시 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기금운용위, 힘겨루기 속 타협점 마련= 이날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한 기금운용위원회는 한 차례 정회를 거쳐 3시간 만인 오전 10시 30분을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더 소요된 셈이다. 시간이 지연되자 지난 26일 기금운용위원회처럼 합의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금운용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표 대결을 지양하고 합의하자는 원칙을 세웠다"며 "지난주에 이미 구체적인 수정안을 제안한 뒤 논의했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제도적 미비로 당장 실현되기 어렵고 기금운용위의 전체 의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경영권 간섭 등 남용 우려를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재계가 한 발씩 양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자본시장법상 임원 선임과 해임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시 지분변동 수시공시와 단기매매차익 반환 등 기금운용상 제약을 받는 현실적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에 대한 재계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시행 과정에서 독립성을 강화하고 운용의 묘를 살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한편 스튜어드십 코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면 앞으로 1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박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했지만 실질적으로 진행하려면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며 "이행과정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었는데 대체로 내년 하반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