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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태원 만나 "SK는 돈 얼마 내셨죠?"

[the L] [비선실록(秘線實錄) 제13화-뇌물죄 피해간 SK] "SK가 약점이 많아 보였나 봅니다"…SK와 최태원 회장 구한 박영춘 부사장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입력 : 2018.08.08 04:00|조회 : 58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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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은 뭘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다일까? 수많은 진실들이 검찰과 특검의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 속에 아직 숨어있다. 그 무수한 비밀을 품은 수사기록을 머니투데이 법률미디어 '더엘'(the L)이 단독 입수했다.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을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하나 하나 건져올려 차례로 연재한다. '비선실세'에 대한 '수사기록'을 재구성한 '비선실록'(秘線實錄)이다.
박근혜, 최태원 만나 "SK는 돈 얼마 내셨죠?"

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오후 강릉교도소. 최태원 SK 회장은 수감 중이었던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을 면회했다. 두 형제는 회삿돈 횡령 혐의로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최 회장만 2015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최 회장은 훗날 “동생 가족들이 제게 많이 서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점이 항상 마음에 큰 부담이었다”(2017년 3월18일 검찰 진술)고 회상할 정도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지 못한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설 연휴 직후 동생을 찾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면회를 마친 최 회장이 교도소 측에 맡겨둔 휴대폰을 찾았다. ‘부재중 통화’ 표시가 찍혀 있었다.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최 회장은 안 전 수석에게 ‘확인이 늦었다’고 문자를 보냈다. 40여분 뒤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VIP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면담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 둘이.

◇“SK가 약점이 많아 보였나 봅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월 15일부터 3월 14일까지 국내 9개 대기업 총수들과 잇따라 개별적으로 면담하는 이른바 ‘독대’ 자리를 가졌다. 2월 15일 삼성, LG,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총수를 시작으로 3월 14일 롯데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독대가 마련됐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에 이미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을 지원한 터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유독 SK와 롯데 두 곳만 박 전 대통령 또는 최씨로부터 추가 출연 요구를 받았다. 당시 SK는 111억원, 롯데는 45억원을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상태였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측은 SK와 롯데에 K스포츠재단에 각각 89억원,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두 그룹의 대응은 달랐다. 롯데는 당시 K스포츠재단 측에 70억원을 제공했다가 나중에 돌려받았다. 이 때문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7년 2월 뇌물 공여 사건의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반면 SK는 박 전 대통령 측이 요구한 돈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최 회장은 신 회장과 달리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왜 하필 SK와 롯데에만 추가 출연을 요구했던 걸까? 당시 두 그룹은 최소 한가지씩 약점이 있었다. 롯데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었다. SK는 최 부회장이 수감 중이었고, 워커힐 호텔 면세점이 특허 심사에서 탈락한 상황이었다. 또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합병 승인 문제가 걸려 있었고, 최 회장의 가정 문제까지 불거진 터였다.

2017년 3월 24일 김영태 SK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최순실에게 저희 그룹이 약점이 많아 보이고, 흔들면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대통령 입장에서도 SK에 얘기하면 (약점 때문에라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최태원 SK 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SK그룹은 미르·K재단에 얼마 내셨죠?"

◇“SK그룹은 미르·K재단에 얼마 내셨죠?”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지 나흘 뒤인 2016년 2월 16일 오후 5시쯤 최 회장은 서울 삼청동 청와대 안가 앞에 도착했다. 긴장된 자리였다. 안 전 수석의 전화를 받은 직후부터 최 회장은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 부회장, 이형희 당시 SK텔레콤 부사장, 박영춘 SK 전무 등을 긴급 소집해 주말 회의를 잡으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 대비했다.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 당일에는 아침 10시부터 독대 상황에 대비한 연습까지 했다.

경호원이 최 회장을 안가로 안내했다. 현관에 안 전 수석이 나와 있었다. 안 전 수석과 함께 대기실에 들어간 최 회장은 잠시 후 청와대 안가 현관 오른쪽 거실에서 박 전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다음은 최 회장이 2017년 3월 18일 서울중앙지검 1015호 검사실에서 한 진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박 전 대통령과 최 회장 사이에 오간 대화다.

박 전 대통령(이하 박) : 요즘 어떻게 잘 지내세요?
최 회장(이하 최) : 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저희 집이 편치는 않습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나왔는데 동생(최재원 부회장)이 아직 못 나와서 제가 조카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이 짧은 대화에서 최 회장은 자신과 SK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최 부회장의 조기석방 문제를 거론했다. 사실 최 회장은 이날의 독대를 위해 SK 최고위 임원들과 함께 △창조경제·규제프리존 △중국 단둥 문화·체육행사 △대중국 반도체 생산투자 △스마트팜 △에코시티 등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준비했었다.

최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당연히 제 마음은, 대통령을 독대할 때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할 테니 동생을 가석방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또 “독대 중에 대통령께 동생 가석방 문제를 함부로 꺼내는 게 어색할 수 있어서 면담을 시작하면서 대통령과 안부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좀 가볍게 동생 가석방 문제를 꺼냈다”며 “그러나 대통령이 별반 긍정적 반응이 없으셔서 상당히 긴장됐다. 면담 과정에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어지는 대화를 보자.

박 : SK가 투자·고용을 좀 더 늘려주면 좋겠습니다.
최 : 네 맞습니다. 그러려면 창조경제, 규제 프리존과 관련해 IT(정보기술) 테스트베드에 외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박 : 이런 얘기는 안종범 수석이 같이 들어야 해요.

이때 박 전 대통령은 직접 일어나 대기실에 있던 안 전 수석을 데리고 돌아왔다.
최 회장은 IT 테스트베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으나 박 전 대통령이 대뜸 다른 얘기를 꺼냈다.

박 : SK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얼마를 출연했지요?
안 전 수석(이하 안) : 111억원입니다.

최 회장은 “대통령과 안종범 수석이 앉으시길래 저는 계속해서 규제 프리존과 관련해 IT 테스트베드에 대해 말씀드리려 했는데 안 전 수석의 답변을 들으신 대통령께서 제게 ‘SK그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후 ‘앞으로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에 검사가 “SK그룹이 이미 납부했거나 납부 중인 출연금 외에 ‘추가 출연’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어떠냐”고 묻자 최 회장은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말씀이 그런 뜻이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다시 독대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여전히 대화는 박 전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안 : SK그룹의 현안으로는 워커힐 면세점 사업을 지속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박 : (최 회장에게) 면세점 선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최 : 면세점 탈락 이후 직원들의 고용이 걱정입니다.
안 : SK그룹의 또 다른 현안으로는 CJ헬로비전의 M&A(인수·합병) 문제도 있습니다.
최 :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 주시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 알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이동훈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이동훈 기자


◇인터넷 검색으로 대충 만든 '89억원짜리' 기획안

이후 최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미리 준비해 간 국가 경제 기여방안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최 회장에게 최순실씨가 주도한 ‘가이드러너’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2017년 4월 14일 검찰 진술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가이드러너’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며 “장애인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것인데 대기업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최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를 마치고 나올 때 안 전 수석으로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받았다. 가이드러너 기획안이 포함된 자료였다. 최 회장은 이형희 당시 SK텔레콤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이드러너인지, 러너가이드인지 들어본 적 있느냐”고 이 부사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 부사장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2017년 4월14일 이 부사장의 검찰 진술서 중)

‘가이드러너’란 최순실씨가 배후에 있던 K스포츠재단이 SK로부터 자금을 출연받기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K스포츠재단에서 일했던 박헌영 과장이 2017년 3월 22일 서울중앙지검 1006호 검사실에서 한 진술을 보면 ‘가이드러너’ 프로그램이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다음은 박 과장과 검사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검사 : 가이드러너 사업을 기획한 게 사실인가?
박 과장 : 그렇다. K스포츠재단 현판식이 2016년 1월 18일이었고 서류상 설립일이 1월 13일이었다. 저는 그 사이에 입사를 했다. 입사 후 최순실이 제게 여러 사업 아이템에 대한 기획안을 만들 것을 요구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이드러너’다. 처음에는 최순실이 가이드러너 사업이 뭔지 잘 몰라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나중에 어디선가 듣고서는 ‘그거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좀 더 구체적 기획안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박 과장은 “처음 제가 만든 기획안은 ‘가이드러너란 이런 것’이라는 정도의 소개자료에 불과했는데 최순실은 구체적으로 가이드러너 학교를 설립하는 기획안을 만들라며 ‘교육사업을 해야 한다. 교육사업을 하는 게 남는 거다’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최씨의 지시에 따라 박 과장이 인터넷에서 ‘평생교육원’이나 ‘직업학교’ 등 키워드로 검색해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것이 ‘가이드러너 전문학교 설립방안’이었다. 최씨는 박 과장의 기획안을 토대로 △가이드러너 연구용역 대금 4억원 △가이드러너 학교 설립 및 운영 35억원 △펜싱·배드민턴·테니스 등 해외 전지훈련 비용 50억원 등 총 금액 89억원으로 기획안을 새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가이드러너 연구용역 등 작업은 더블루K라는 회사가, 펜싱 등 종목의 해외 전지훈련은 독일의 ‘비덱’이라는 회사가 맡아 진행하는 걸로 결정됐다.

“무슨 근거를 가지고 (가격을) 산출한 게 아닙니다. 솔직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연구용역 제안서를 가지고 몇 가지만 고쳐서 작성했습니다. 예산이 마음에 안들면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작업을 여러번 했습니다. 모든 금액은 최순실이 조정하고 결정했습니다.” 박 과장의 진술이다.

최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기획안을 투명한 플라스틱봉투(파일)에 넣고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등의 명함을 클립으로 파일 겉면에 고정시킨 뒤 포스트잇에 ’롯데‘ ’SK‘ ’GKL‘ 등 대기업 이름을 쓰곤 어디론가 가져갔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을 거쳐 최 회장에게로 전달된 서류가 바로 이 ’가이드러너’ 기획안이다.

박영춘 SK 수펙스추구협의회 CR팀 팀장(부사장)/ 사진=뉴스1
박영춘 SK 수펙스추구협의회 CR팀 팀장(부사장)/ 사진=뉴스1


◇최태원 회장을 구한 주인공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온 뒤 본격적으로 SK그룹과 최씨 측 K스포츠재단 사이에 대화가 시작됐다. SK그룹의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던 박영춘 당시 전무(현 SK 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이하 당시 직책으로 표기)가 SK 측의 실무진 대표로 나섰다. K스포츠재단 측에선 정현식 사무총장과 박헌영 과장, 독일의 스포츠 전문회사라고 하는 ‘비덱’의 한국지사장(또는 이사) 명함을 갖고 있던 장순호씨가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SK는 박 전무의 ‘활약’ 덕분에 K스포츠재단에 돈을 추가로 출연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최 회장은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K스포츠재단 측과의 두 차례 미팅에서 개운치 않은 느낌을 받았던 박 전무는 당초 요청액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로 출연 금액을 깎았다. 또 “일시납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분납하겠다”며 조건을 붙이고, “최종결정까지 한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며 시간을 끌었다. 이에 최씨는 결국 “SK한테서는 돈을 안 받겠다”며 판을 깼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관료 출신인 박 전무의 ‘깐깐함’이 최 회장을 구한 셈이다.

다시 SK와 K스포츠 측의 협의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박 전무는 김영태 부회장으로부터 안 전 수석이 최 회장에게 줬다는 서류봉투를 건네받았다. 박 전무는 최 회장의 독대로부터 약 1주일이 지난 2016년 2월 24일 정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1차 미팅 약속을 잡았다.

2016년 2월 29일 박 전무 등 SK 관계자들과 정 총장, 박 과장 등 K스포츠재단 관계자, 그리고 비덱의 장씨 등은 ‘가이드러너’ 프로그램 등 총 89억원 지원의 세부적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처음 만났다.

그런데 박 전무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주체는 더블루K와 비덱인데 K스포츠재단이 저희와 협의를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해외 전지훈련 비용 50억원을 SK 해외 법인으로 하여금 독일 비덱사로 바로 송금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상당히 이례적이었다.”(박 전무의 검찰 진술)

독일 비덱의 한국지사장이라고 소개된 장순호씨의 허술함도 박 전무의 의심을 키웠다. 다음은 박 전무와 정현식 총장, 박헌영 과장, 장씨 등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1차 당시 대화 내용이다.

박 전무(이하 박) : 비덱이 어떤 회사인가?
장씨(이하 장) :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유망주의 전지훈련에 관한 도움을 맡아서 해주는 회사다.
박 전무 : SK가 대한펜싱협회 회장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나?
장 : 모른다.
박 전무 : 배드민턴 종주국이 어딘가?
장 : 중국 아닌가? (편집자 주: 배드민턴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이 때부터 박 전무는 장씨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무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첫 미팅에서 박 전무에게 허점을 보였던 장씨는 여행사에서 일하던 1987년 당시 서울 신사동 유치원 원장이던 최씨의 해외여행 수속을 도와주면서 최씨와 인연을 맺게 된 인물이었다. 이후 줄곧 최씨의 일을 봐주던 장씨는 2016년 2월 27일 최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누가 명함과 전화기를 줄 거다.”
다음은 2017년 3월24일 서울중앙지검 1003호 검사실에서 장씨와 검사가 주고받은 문답이다.

장 : 2016년 2월27일쯤 최순실이 제게 전화해 뜬금없이 ‘모레 정현식과 박헌영을 SK에서 만나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최순실이 ‘영재를 발굴해 독일에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에서는 지연·학연 등으로 영재들이 묻힌다. 그래서 독일에 있는 비덱에서 영재를 발굴해 육성할 것이다. SK가 도와줄 것’이라며 ‘박헌영이 SK에 얘기할테니 그냥 참석만 하면 된다’고 했다.
검사 : 정현식과 박헌영을 알고 있었나?
장 : 박헌영은 2015년말 최순실이 독일 비행기 발권하는 문제로 통화한 적 있었다. 정현식은 SK 본사 1층 로비에서 처음 만났다. 박헌영이 제게 전화를 해서 1층 로비에서 만났고 정현식도 처음 만나 인사했다.
검사 : 진술인(장씨)은 비덱 관련 자료를 박 전무에게 전달했나?
장 : 제가 당시 아무런 미팅 자료도 가져가지 않았다. 박헌영이 비덱 관련 제언서도 가져왔다. 저는 비덱 제안서를 SK에서 처음 봤다.
검사 : 비덱의 뜻은 무엇이냐?
장 : 잘 모르겠다.
검사 : 진술인은 독일어를 할 줄 아는가?
장 : 전혀 모른다.
검사 : 비덱 서울지사 사무실 위치는 어떻게 되나?
장 : 제가 받은 명함에도 사무실 주소가 없었다.

박 전무는 이날 미팅을 마치고 김영태 부회장에게 “거액을 요청하면서도 자료가 너무 부실하다. 자금지원 주체도 불분명하다”고 부정적으로 보고했다. 그리곤 K스포츠재단 측에 ‘더블루K나 비덱에 자금지원을 하는 대신 보다 공신력을 갖춘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는 방안이 어떠냐’고 역제안을 했다.

이후 SK는 K스포츠재단에 당초 요청액(89억원)의 절반도 안되는 24억원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전달했다. 이에 최씨는 “30억원을 달라고 해보라”고 박 과장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SK 측은 다시 30억원을 한꺼번에 지급하지 않고 10억원씩 3년에 걸쳐 분납하는 방안을 내놨다. 재차 최씨가 “한꺼번에 30억원을 달라고 하라. 안 되면 20억원, 10억원씩 분납하는 방안을 요구하라”고 지시했다.

SK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SK 측은 사회공헌위원회의 최종 결정 등이 있어야 해 한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에 최씨는 불안함을 느꼈는지 돈을 안 받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정현식 총장은 검찰 조사에서 “SK가 먼저 ‘못 주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적은 없었다”며 “최순실이 ‘말이 있을 수 있으니 안 받는 게 좋겠다’고 해서 중단했다”고 밝혔다.

박 전무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박 전무의 갖가지 조건을 붙이자 최씨는 정 총장에게 “안 수석에게 얘기를 하라”고 했다. 이에 정 총장은 안 전 수석에게 “SK 박영춘이 빡빡하게 나온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안 전 수석은 두 차례에 걸쳐 SK 측에 “박영춘이 누구냐, 너무 빡빡하게 군다. 대통령이 관심 가지고 지시한 사안인데 잘 살펴봐 달라”(2016년 3월) “박영춘이 어떤 X이냐, 걔는 순순히 협조할 놈이 아니다. K스포츠재단 사람을 이상한 사람, 마치 죄인 취급한다고 하더라”(2016년 4월) 등 경고성 질책을 하기도 했다.

훗날 박 전무는 검찰에서 “경제수석이 K스포츠재단의 불만사항을 언급한다는 점에 굉장히 놀랐다”며 “안종범이 저에 대해 2차례나 질책성 발언을 해서 제가 상당히 위축됐다. 이형희 부사장이 안 수석에게 ‘이 지원이 괜찮겠냐,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음에도 만약 계속 K스포츠재단 지원하라고 연락이 오면 K스포츠재단에 자금지원을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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