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례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는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법원 판례를 두고 갈지자(之)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산정 근로시간 기준은 대법원 판례와 정반대의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기업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관련 지침을 개정하려 한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 법원 판결을 취사선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고용부에 따르면 최저임금 산정기준 근로시간에 주휴시간 등 유급휴일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0일 입법예고 됐다. 이는 최근 대법원의 판례와 배치되는 내용이다.

대법원 1부는 지난달 4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유급휴일 임금인 주휴수당 관련 근로시간(주 8시간)은 소정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07년에도 유급휴일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고용부는 1997년 통상임금 규정에 유급처리 일수를 포함시킬 당시 또는 올해 6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바꿀 때 함께 개정했어야 할 소정근로시간 규정이 뒤늦게 바뀐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소정근로시간 개념이 일종의 '입법적 불비(不備)'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소정근로시간을 불분명하게 놔뒀기에 법원이 이미 존재하는 문구들만 기계적으로 해석해 판결을 내놨다는 게 고용부의 입장이다. 고용부는 시행령이 개정되면 법원의 판결 역시 바뀐 시행령을 따라올 것이라고 판단한다.


고용부가 최저임금법 관련 대법 판결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정반대의 입법예고를 했지만 지난 2월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내부 지침을 판례에 맞춰 바꾸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바로 삼성전자 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둘러싼 정보공개지침이다.

고용부는 지난 2월 18일 삼성 직업병 사망 근로자가 청구한 작업환경보고서 공개에 대해 대전고법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자 법원 판단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삼성전자 작업환경보고서가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공개하지 않았는데, 법원 판결에 맞춰 이를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해당 판결에 근거해 앞으로 다른 사업장에서도 작업환경보고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지침도 바꾸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이달 7일에도 앞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 종사자들이 주요 암에 걸릴 경우 전문 역학조사 없이도 산업재해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법원에서 산재로 판정한 전례가 있는 공정에 1년 이상 종사했던 근로자 또는 퇴직근로자가 암에 걸리면 이를 산재로 '추정'해 보상하겠다는 게 고용부 방침이다.

고용부가 법원의 판례에 배치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판례에 따라 내부지침을 개정하겠다는 등 모순된 모습을 보이면서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 판결의 귀속력은 해당 사건 당사자에게만 미치기 때문에 법원의 취지와 반대되는 정부 입장의 시행령을 만드는 데 법적 문제는 없다"면서도 "이미 나온 대법 판결을 참고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개정된 시행령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