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노 민스 노'에서 '예스 민스 예스'로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여성들이 여성 인권 향상을 요구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지옥조차 멸시당한 여자의 분노는 따라갈 수 없다."(Hell hath no fury like a woman scorned)

1990년 미국 세인트존스대에 재학 중이던 한 여성은 이성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신 뒤 6명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결론은 무죄였다. 피해자가 이중 한 명과 친밀한 사이였다는 점이 강제성 입증을 어렵게 했다. 한 배심원은 우리로 치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뜻의 이 말로 이 여성이 사적인 원한으로 무고를 했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1970년대 미국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강간 문화'(rape culture)라는 단어로 당시 사회를 설명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종의 '성(性) 문화'로 묵인됐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노 민스 노'(No means no)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상대방이 성관계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를 강행했을 경우 이를 강간죄로 처벌할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노 민스 노' 룰은 '거부'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미인대회에 참가한 대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타이슨 측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으나, 피해자가 강압적인 성행위로 인해 찰과상 등을 입었다는 의학적 소견과 타이슨이 앞서 미인대회 리허설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더듬고 외설적인 농담을 했다는 증인 10여명의 증언이 참작됐다.

반면 2015년 만취한 동료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예일대 남학생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했다는 피해 여학생의 주장과는 달리 CCTV 영상에 멀쩡한 모습으로 촬영됐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상대방이 적극적이고 명시적으로 성관계 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강간으로 간주하고 처벌한다는 것이다.

2014년 9월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가 가장 먼저 '예스 민스 예스' 룰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긍정적 동의'(affirmative consent)가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할 때라고 정의했다. 즉, 성관계 당시 동의 여부가 중요할 뿐, 주취 상태나 과거 관계 등 부수적인 사항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이후 미국 내 유수 대학들이 위치한 일리노이 주, 뉴욕 주, 코네티컷 주 등이 뒤를 따랐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약 90%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면식이 있거나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거부성'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스웨덴,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도 '예스 민스 예스' 룰을 입법화했다. 스웨덴은 지난 5월 성관계 전 상대방으로부터 명백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전에는 성행위 당시 폭력이나 강요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강간죄가 성립됐다.

스페인에서도 2016년 한 축제에서 5명의 남성이 18세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일을 계기로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당시 스페인 법원에서는 가해자 2명이 촬영한 성폭행 장면을 증거자료로 확보했는데, 여성이 조용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를 간접적 '동의'로 간주하고 강간죄가 아닌 '지속적 성적 학대' 혐의만을 인정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고, 결국 '예스 민스 예스'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