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근혜 前대통령 '재판개입 의혹' 연루 정황 포착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9)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차한성 전 대법관(63·사법연수원 7기)을 만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16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 14일 검찰 소환조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 개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사법부-청와대간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됐다는 진술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별다른 친분 관계가 없던 차 전 대법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이후 2013년 12월1일 비서실장 공관에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65)과 함께 차 전 대법관을 만났다.

검찰은 이 회의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결론을 지연시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검찰에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익을 위해 한 일일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김 전 실장과 차 전 대법관이 만나기 두 달 전인 2013년 10월 당시 주일 한국대사였던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71·구속)이 청와대와 외교부에 "강제징용 판결을 전원합의체로 돌려 다시 파기환송시켜야 한다"고 보고한 문건도 확보했다.


당시 청와대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과거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였다.

앞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2012년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서울고법은 이듬해 원고들에 각각 1억 원씩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대법원은 재상고심으로 올라온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5년 넘게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키는 대가로 정부에 판사들의 해외 파견지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3년 말 주철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72)을 만나 판사의 해외 파견 확대를 요청한 사실도 파악했다.